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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일보

[재경리뷰] 미친 듯이 춤추고 꿈꿔라 '빌리 엘리어트'

동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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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2000년에 개봉된 영화 '빌리 엘리어트'로 감동을 받았던 관객이라면 즐거워할 소식이 있다. 영화에서 표현해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내며 풍부한 스토리라인을 자랑하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드디어 한국에 상륙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가 개봉된 지 5년 뒤에야 뮤지컬로 탄생했다. 원작의 감독이자 유명 무대 연출가인 스티븐 달드리, 그리고 뮤지컬 '아이다'와 '라이온 킹'의 작곡가이자 영국의 국민 가수인 엘튼 존이 만나 영화보다 더 깊은 감동을 전해주는 뮤지컬을 탄생시켰다.

이 뮤지컬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다가 2006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올리비에 어워드를 석권하더니, 지난해에는 미국 브로드웨이에 상륙해 토니어워즈의 10개 부문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한국 공연은 공연이 시작된 지 5년 만에 아시아 최초로 공연되는 것으로, 뮤지컬 강대국 일본에 앞선 것이다. 특히 비영어권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 '빌리 키워드' 1= 천부적 재능을 지닌 11세 소년의 격정

이 작품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11살 소년이 발레리노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능과 춤이라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성공담인 셈이다. 그러나 '빌리 엘리어트'가 가볍지 않은 것은 암울한 시대적인 배경,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주인공 빌리의 현실 때문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1984년 세계 대전 후 극도로 피폐해진 영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마가렛 대처 수상이 정부가 주도하던 탄광을 폐쇄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의 산업 생태계를 뒤바꿔놓을 만큼 격렬했던 파업에 돌입한 한 탄광촌이 배경이다. 게다가 빌리는 어머니는 돌아가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볼 수밖에 없는 상황의 11살 소년. 아버지와 형은 파업에 몰입하며 빌리와는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발목이 잡힌 빌리는 자신의 꿈이 뭔지도 모른 채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아버지처럼, 형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광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나 권투 수업을 받고 있던 빌리는 우연히 발레 레슨을 접한 뒤 발레리노의 꿈을 꾸게 된다. 11세 소년의 열정이 드러나기 시작된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격정을 드러내며,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춤을 추는 빌리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아이의 춤은 '춤'이 아니라 자기 감정의 표현이다. 1막의 마지막에서 오디션에 나갈 수 없게 된 빌리가 터질 듯한 분노를 드러내며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장면은 어린 아이답지 않은 폭발적인 에너지가 느껴진다.

4명의 대한민국 '1대 빌리'인 김세용(13), 이지명(13), 정진호(12), 임선우(11)는 영화 속 빌리 못지않은 재능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빌리 찾기'는 2009년 2월부터 시작돼 4차에 걸친 오디션이 1년 이상 진행됐고, 이들 빌리들은 지난 3월에서야 간신히 찾아진 만큼 공연 내내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한국 빌리의 춤에 환호하는 한편, '나는 저때 뭘했나'하는 어른 관객들의 탄식이 절로 나올 화려한 장면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 '빌리 키워드' 2= 부정(父情), 땅 속의 광부가 천상으로 아이를 보내다 

극 중 명장면으로 까칠한 발레 선생 윌킨슨 여사와의 안무 짜기, 빌리의 분노, 빌리가 미래의 빌리와 함께 추는 2인무 드림발레, 로열발레스쿨에서 빌리가 선보이는 '일렉트리시티(열광)' 등이 꼽힌다.

그러나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장면은 발레스쿨로 떠나는 빌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칠흑 같은 탄광 속으로 빨려들 듯 내려가는 광부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이다. 마치 천상의 세계(발레 학교는 천사들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로 아이를 올려 보내는 지하의 전사들과 같은 비장함이 살아있는 장면이다.

빌리의 아버지는 큰 아들 토니와 함께 파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아들이 발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혹시 아들이 '동성애자'는 아닌가 걱정하며 작은 아들의 꿈을 막던 아버지이지만, 빌리의 재능을 깨닫게 되면서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 그는 마을 광부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아들을 오디션에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파업 투쟁에서 빠진다. 큰 아들에게 "빌리는 성공할지도 몰라. 우리처럼 만들어서는 안 돼"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절규에서 관객들은 우리 부모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뮤지컬에서는 탄광촌의 사람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해 빌리의 오디션 여비를 마련한다. 게다가 일찌감치 파업에서 빠져 '배신자'로 불리던 토니의 친구는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빌리에게 당시로서는 큰 돈을 내놓는다. 뮤지컬 내내 흐르던 노동자 계급과 브루주아 계급의 갈등이 한 아이의 꿈 앞에서는 녹아내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는 안타깝게 편집된 장면으로 알려져 있다.

◆ '빌리 키워드' 3= 불안한, 그러나 설레는 빌리의 미래 

이처럼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당시의 현실을 놓치지 않으면서, 알싸한 비장함을 살려낸다. 빌리가 로열발레스쿨에 합격한 그 순간 파업이 사측의 승리로 끝나는 것도 그러한 장면의 하나다.

또한 뮤지컬이 단순히 한 천재 소년의 성공담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왠지 모를 설렘과 불안감이 감도는, 허전한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원작에서는 빌리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이 되어 비상(飛上)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빌리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땅속으로 사라져가는 듯한 아버지와 마을을 뒤로하고 떠나가는 11세 소년의 모습이 그려질 뿐이다.

빌리는 겨우 발레스쿨에 합격했을 뿐이다. 그것을 위해 빌리는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혔고, 가족과 함께 그 벽을 깼다. 그렇지만 얼마만큼의 벽이 더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벽을 넘으려면 빌리는 미친 듯이 춤추고 꿈을 꾸는 수밖에 없다. 오직 열정만이 그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다.

다만, 빌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설렘도 여전히 남아 있다.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된 가족이 있기 때문. 빌리가 면접을 보던 때 "빌리를 전적으로 지원할 수 있냐"고 묻는 면접관을 향해 빌리의 아버지는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할 수 있다"고 다짐한다.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약간의 시간을 두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빌리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그마한, 그러나 결정적인 빛을 볼 수 있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당시 영국의 시대적·사회적 상황과 신분적인 갈등을 한 소년의 삶에서 풍부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한국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북부 영국식 거친 말투를 한국의 사투리로 표현해 냈다거나, 노래 가사를 매끄럽게 처리하려고 하는 등 곳곳에서 연출자들의 정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대한민국 1대 빌리들의 춤과 연기, 그리고 그들의 재능과 열정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지난달 13일 국내 무대에 오른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성공적으로 출발했다. 노련미는 부족하지만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다. 게다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오픈런(끝나는 날짜를 정해놓지 않고 하는 공연)으로 마련되지 않았는가. 아이와 함께 찾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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