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책과의 만남]詩 그리고 사진…세상을 위한 따뜻한 앙상블, 시화집 ‘환몽’

시인 김정희·정충화 시화집 ‘환몽’ 출간

장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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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두 명의 시인이 공동으로 시화집을 출간했다. ‘환몽(幻夢)’이라는 제목의 이 시화집은 시와 사진을 결합한 독특한 형태로 꾸며졌다.

도서출판 여름숲에서 펴낸 이 책에는 2000년 계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한 김정희 시인의 시 72편과 2008년 계간 <작가들>로 등단한 정충화 시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 72편이 각각 수록돼 있다.

문학의 중심인 시와 미술의 한 장르인 사진은 텍스트와 이미지, 즉 언어와 회화라는 표현수단과 묘사의 방법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지닌다. 그럼에도 시화집 ‘환몽’은 이 같은 문학작품과 시각예술이라는 두 이질적 장르가 상호 보완적, 보족적인 아우라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72편의 시와 사진들이 서로 의미를 섞으며 조응하고, 때로는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문학과 회화의 장르를 교묘하게 조화시켜, 언어와 이미지라는 서로 다른 표현수단으로 은유와 함축의 결을 다듬어 펼쳐 보이는 색다른 예술세계를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 시화집 '환몽(幻夢)' 표지
▲ 시화집 '환몽(幻夢)' 표지
<추천사>
나는 시의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시가 그리는 이미지와 사진이 찍어낸 이미지의 영역이 서로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집을 보면서, 그게 내 속 좁은 기우였다는 것을 환하게 깨닫는다. 김정희의 세계는 견자見者의 시학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밖을 향해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시선을 던져, 사물 속에서 정확한 의미를 짚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삶의 보편 원리로 단숨에 바꿔버린다. 이런 견자의 시각이 정충화의 사진에서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는 프레임 밖의 시간과 공간을 놀라운 솜씨로 프레임 안에 구현함으로써, 시가 전하고자 하는 의미들을 선명하게 확장시킨다. 이미지들이 서로 몸을 섞으며 시를 더욱 깊게 만든다.    
- 정한용 (시인)

김정희 시인의 ‘말의 사원(寺院)’은 정결한 언어로 빚어낸 적멸의 공간이다. 문학의 언어가 존엄과 기품을 점차 잃어가고 사람들이 앞 다투어 탐욕의 거리로 몰려갈 때 시인은 제 자신의 ‘아픔의 神’을 통해 다른 이의 상처를 어르고 위무해준다. 그 목소리는 나지막하지만 그 소리가 가 닿는 지점에는 세계와 사물의 근원에 대한 깊은 사유와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경박하고 비루해진 삶의 외경을 복원시키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우리는 그의 언어에 귀 기울이게 된다. 정충화 시인이 오랫동안 주변부 사물에 대한 특유의 시선과 감성으로 포착해낸 사진 속의 시간과 공간도 섬세한 사유와 깊은 성찰의 결과물일 터이므로 두 개의 장르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시적 여백과 이미지의 울림은 상통한다. 긴 여정의 발품 속에서 하나씩 탄생했을 사진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는 적요하고 아름답다. 시인의 예술적 심미안과 문학적 감성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니 더없이 흥미롭다. 
- 김정화 (문학평론가, 가천의과학대 겸임교수)

국가보안법의 감옥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은 채 단식을 하던 어느 날인가 식구통에  그녀의 시집이 놓여졌다. 천천히 넘기던 시집 위에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의 새 시집을 받아보았다. 이번엔 눈물 대신 이슬이다. 그녀의 눈가슴과 귀가슴이 톱밥 같은 현실을 끌어안아 잉태시킨 서정은 흙을 삼켜 양분을 걸러내는 지렁이와 같고, 거친 풀만을 먹으나 젖을 만들어내는 소와 같다. 여기에 시사진(詩寫眞)이 이룬 성취도 주목할 만하다. 사진이 너무 구체적이면 시를 해치고, 너무 추상적이면 시와 같이 있을 이유를 상실하기에, 그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시사진의 긴장이 오히려 편안하다.
- 이시우 (사진작가)

※ 작가소개

▲ 시인 김정희(왼쪽) 씨와 정추화 씨
▲ 시화집 '환몽(幻夢)'을 함께 펴낸 김정희(왼쪽) 시인과 정충화 시인
시인 김정희는 2000년 계간 <문학과 의식>을 통해 등단해 시집『산으로 간 물고기』, 『벚꽃 핀 길을 너에게 주마』를 펴낸 중견작가다.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려온 그는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소외된 인간의 삶과 사물에 대한 진지한 관조를 날카로운 시어로 묘사한 수작을 발표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시인 정충화는 2008년 계간 <작가들>로 등단한 신인작가로, 오랜 기간 사진촬영과 여행을 취미로 삼아온 그는 평소 자연과 사물에 대한 직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영상세계를 표현해왔으며, 생태 연구와 시작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인천작가회의’와 문학동인 ‘빈터’에서 함께 활동 중이다.

시화집 ‘환몽’을 펴며

카메라를 처음 갖게 된 게 약 삼십 년 전 일이다. 군 복무 기간 중 돈을 모아 고급 카메라를 장만했을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필름 앞에서 여닫히는 포컬 플레인 셔터의 부드러운 금속음은 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사진은 내가 세상과 사물을 접하는 창이자, 통로 역할을 했다. 뷰파인더에 포착된 피사체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통해 사물의 근원에 대한 사유의 폭을 넓혔고, 내 빈약한 예술적 안목을 높일 수 있었다. 사진은 그렇게 흘러와서 내 시의 첫 번째 스승이 되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찾아 나선 수많은 길과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과 자연, 식물들 역시 내 시의 토대를 다져준 훌륭한 스승이었다.

시와 사진은 문학과 미술이라는 예술 분류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서로 닮아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 언어와 영상이라는 표현 양태나 기법 등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만, 작품을 통해 전달되는 울림 면에서는 귀결점이 같다.

시와 사진이라는 두 이질적 장르가 지니는 동질성은 묘사나 표현을 위한 기본 단계인 마주침과 바라봄에서 잘 드러난다. 두 장르 모두 인간과 사물, 자연과의 대면과 관찰을 통해 솟아난 감흥, 그리고 관조를 통해 숙성되는 사유와 성찰이 밑바닥에 깔리기 때문이다.
시와 사진이 지니는 또 다른 동질성은 은유와 함축미에서 찾을 수 있다. 좋은 시의 덕목은 아름다운 묘사를 바탕으로 은유와 함축이라는 표현 장치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묻어둔 행간의 메시지를 유추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데 있다.

순간을 포착하는 영상매체인 사진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지의 사실적인 전달, 즉 팩트가 생명인 보도사진과는 달리 예술성을 추구하는 사진은 시와 마찬가지로 은유적 디테일과 함축적 구도 등을 통해 작품성을 평가받게 된다.

간결하고 절제된 수식어로 독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시나, 단 한 컷의 이미지로 예술적 가치를 표현하는 사진은 작품에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 감상자가 어떤 의미로 읽어내느냐에 따라 작품성과 예술성의 깊이가 달라진다.

그러나 이 두 장르 간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사유와 성찰을 통해 대상물의 내면 또는 그 너머까지 묘사하는 시와 달리 사진은 그 속성상 보여지는 범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화집 『환몽』은 몇 해 전 평소 내 사진에 호감을 표시해온 김정희 시인의 제안으로 불씨가 지펴졌다. 그리고 올봄 김 시인으로부터 시 원고를 넘겨받아 작업에 착수하면서 나는 견고한 벽 앞에 가로막힌 듯 참으로 막막하였다. 평소 찍어둔 사진은 많았지만, 작품의 완성도도 문제려니와 웅숭깊은 김 시인의 시와 조화를 이루는 사진 찾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작업 과정에서 내가 가장 고심한 부분은 시를 위한 사진이 되어서도 안 되고, 사진이 시를 덮어서도 안 된다는 점이었다. 나의 바람은 이질적인 두 작품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아우라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일흔두 편의 시를 반복하여 읽으며 행간의 의미를 헤아리고 거기 접목할 이미지를 찾느라 무려 석 달여를 끙끙 앓았다.

나는 이 시화집에서 시인의 입장을 벗어나 사진가적 관점으로 김정희 시인이 펼쳐놓은 시의 맥락을 뒤쫓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물은 너무나 미흡하고 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어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순수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이니 크게 흠 될 것 없으리라는 편리한 자기 합리화로 용렬하게 위안을 삼는다.

이 시화집으로 해서 내 눈이 반 뼘쯤은 더 열렸음을 고백할 수 있어 기쁨이 크다.

2010년 가을

정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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