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형제같이 지내는 동네부부 모임에서 1박2일로 경주를 갔다. 출발 하는 날 낮엔 걷기를 하고, 밤엔 안압지 야경을 감상하며 다음날은 양동마을을 답사키로 했다.
걷기코스는 문화의 거리(중앙시장 부근) →노서리고분군→천마총→대릉원→ 첨성대 → 계림 → 반월성 → 향교 → 최부자집까지 3시간 정도로 예정한다.
천년고도(千年古都)인 경주는 역시 시간을 가지고 느리게 걸어봐야 한다. 자동차로 잠깐 보고 가는 여행은 옛 문화의 숨결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첫 출발지인 문화의 거리에 들어서니 건물들은 일직선으로 서있는데 길은 곡선이라 자연스럽지 못하고, 차량 통행도 많아 가로 풍경은 산만하다. 이 거리를 지나면 바로 눈앞에는 마치 들판에서 솟아난 듯한 고분군들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사각뿔 형태의 날카로운 모습이 무척 인공적이나, 경주의 고분은 산봉우리를 닮은 원형의 곡선이 우리의 산 능선과 조화를 잘 이룬다. 이 거대한 고분들은 고요히 침묵 하고 있는데, 고분 주위를 맴도는 우리 산자들의 움직임은 그저 분주하기만 하다. 또한 죽음과 삶이 극명히 대비된다.
반월성은 왕이 거처한 정궁이었다는데, 화려했을 궁궐은 없고 빈터만 황량하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옛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걷다가 우리 일행은 넓은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져온 점심을 나눠 먹으며 비워진 배만 양껏 채운다. 식후 포만감의 즐거움도 잠시,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경주 향교를 둘러 본 후, 곧장 최 부자 집으로 향한다. 최 부자 집 답사는 처음이라 볼거리가 많았다.
사용한 목재의 품질도 상급이었고 건축의 완성도도 높았다. 대청마루 원형기둥의 나뭇결 모양은 마치 우리 산천을 묵화로 그려 놓은 듯하다. 외장재로 사용된 판재도 결의 방향으로 짜 맞춘 구성이 예사롭지 않다. 역시 훌륭한 건축은 시대를 초월한다.
최 부자 집 답사를 마지막으로 오늘 걷기 일정은 아쉽게도 끝이 났다. 숙소에 짐을 풀고 순두부로 저녁식사를 한 후 6시경 안압지로 향한다.

안압지는 인공건축물의 직선과 호수의 곡선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신라 왕실정원의 걸작품이다. 소문대로 안압지의 인공조명은 단연 압권이었다. 낮에 보는 안압지의 건축이 다소 남성적이라면, 조명을 이용해 밤 호수에 비친 처마의 아름다움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안압지의 아름다움에 취해 숙소로 돌아온 우리일행은 낮에 사둔 교동 법주의 그윽한 맛과 아련한 향기에 다시 취해 정신없이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찾은 양동마을은 자동차와 사람들로 무척 붐볐다. 전통 살림집 중 임진왜란 전에 지은 것이 현존하는 것은 전국에 10개 정도라 한다. 그 중에 무려 4개가 이 양동마을에 있다. 관가정과 향단, 무첨당과 서백당이다. 거의 보물들이다.
희소성만으로도 대단한 가치가 있다. 400년이 넘은 이집에서 지금도 현대인이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 서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이다. 작품성 또한 뛰어나. 집도 집이지만 서백당에 들어서면 500년을 넘긴 향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서있다. 나는 이집을 찾을 때 마다 꼭 이 향나무를 어루만져본다.
그 수많은 영욕의 세월을 말없이 지켜보며 집과 함께 하고 있다. 인공과 자연이 하나 되고, 400여 년 전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이 건축과 향나무가 얼마나 고귀한지 모른다.
그렇다. 건축이란 이런 게다. 그 장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건축과 이 한 그루의 나무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고 그 속에서 유정물과 무정물이 함께 공존 하며 살아간다. 건축가의 사명은 이런 건축을 만드는 데 있다.
글ㅣ김성곤 성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블로그(http://blog.naver.com/sg8883)









![[금융진단] 미 증시, 지정학 완화·빅테크 반등에 상승](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982892/image.jpg?w=288&h=168&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