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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는 인식이 가장 강해질 때는 살면서 수많은 한계에 부딪힐 때다.
어떤 이는 그것을 외면하고, 또 어떤 이는 그 앞에 꺾이고 만다.
자신을 압박해 오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버텨내는 것이 곧 삶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잔인한 현실을 잊어가며 사는 것이다.
그 방법이 건강한가, 건강하지 못한가의 차이만 있을 뿐. 현실 앞에 외로워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다. 극단 “가변”의 새 연극,
연극 속의 세 주인공 ‘그’와 ‘그녀’, 그리고 ‘나’는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되지만 한편으론 전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괴로운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그와 그녀, 타인의 삶에 무심하려 노력하는 나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닮아있기에 익숙하다.
실험적이고 상징적인 이 작품에서 오히려 우리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Needless’는 “자살이나 고통 따위를 피할 수 있는데 그러하지 않은”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저마다의 상처와 외로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극중 세 인물들은 현대인의 전형이다.
꿈도 희망도 없이 서로에게 탐닉하며 상처를 내는 ‘그’와 ‘그녀’도,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고통을 굳이 피하지 않는 ‘나’도 모두 Needless하다. 극을 보다보면 몽환적이고 상징적인 무대는 곧, 우리가 속한 현실 속의 공간으로 치환된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 무대 위의 주인공들도, 극을 보는 관객들도 결국은 모두 Needless한 사람들이라는 날카로운 시각을 담고 있는 것이다.
추문에 휘말린 채 비난을 견딜 수 없어 자살한 여자 아나운서의 죽음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고 연출자는 말한다.
그녀가 느꼈을 절망과 외로움은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감정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처와 외로움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그를 통해 관객들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연출자의 의도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시대다. 결국 ‘살지 못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이 연극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지막 장면에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다. 현실 앞에 외롭고 고통스럽기만 했던 세 인물은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위로를 받는다.
세 주인공의 마지막 독백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다시 한 번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을 상징한다.
정성스레 조각했던 목각인형을 가슴에 품으며 ‘그’가 새로운 꿈을 꾸는 것처럼, 결국 삶이란 ‘죽지 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연습’임을 이 연극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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