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재경칼럼]조세피난처가 싸이대통령 부른다

해외금융계좌는 조세피난처 한건도 없다

“리스트 명단에 나온 한국인들의 주소는 대부분 서울이고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설명해줄 비영리 한국 언론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제러드 라일 기자가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라일 기자는 지난 4일 조세피난처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에서 내부기록 수백만건 자료를 최초로 입수한 호주의 탐사 전문기자로, BVI에 재산을 은닉해 오던 전 세계 대통령 친인척·정치인·기업인 수천명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던 장본인이다.

검은돈 주인 명단에는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의 친구이자 대선캠페인 공동 재무담당 장자크 오기, 아제르바이잔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의 두 딸, 러시아의 이고리 슈발로프 제1부총리 부인, 몽골 전직 재무장관 출신 국회 부의장, 최근 사망한 러시아 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동료 백만장자인 스콧 영, 영국계·아일랜드계 은행에서 기록적인 7억5천만 파운드의 부동산 대출을 받아 수감된 아킬레아스 칼라키스, 캐나다 현직 상원의원의 남편 토니 머천트도 있었다.

이 밖에 필리핀의 전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의 맏딸, 스페인의 최고 부자 미술품 수집가인 카르멘 티센-보르네미사도 그림을 사기 위해 BVI 업체를 단골처럼 이용해 왔다.

리스트에는 캐나다, 미국,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이란, 중국, 태국, 구(舊)공산권 국가들 출신의 정부 관료나 고액 재산가들도 다수 포함됐다.

ICIJ가 곧 발표할 한국인 명단이 당초 70명이라고 했던 규모가 중복 이유로 줄어들 예정이지만 여하튼 이로인해 밤잠을 설칠 재벌 총수 일가들과 정치인들이 제법될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지난해 7월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조세회피처의 은닉자금 규모를 발표한 터라 이번 발표는 후속 조치로 어느 정도 예고되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TJN이 발표한 조세회피처를 이용한 역외 자산 규모가 최대 32조달러(약 3경5천조원)로 OECD가 최대로 추정하고 있는 11조5천억달러의 3배 규모다.

TJN에 의해 역외경제(offshore economy, 자국보다 규제가 덜한 해외 시장)에 숨겨진 자산 규모가 이처럼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전 세계적으로 처음이다. 보고서는 세계 인구의 1%도 안 되는 슈퍼리치들이 UBS나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같은 세계적 금융기관들의 프라이빗 뱅커(PrivateBanker, 고액 자산가의 재산을 관리해 주는 은행원)들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나 버뮤다, 케이먼 군도, 마샬 군도, 버진아일랜드 와 같은 조세 피난처로 옮겨 놓은 재산들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세계 각지의 조세 피난처에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전 세계 부자들은 대략 935만 명으로 추정되며, 전 세계 70억 인구의 0.13%가 세계 금융자산의 30%, 해외 은닉 자산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40년간 해외로 빼돌린 탈세금액이 857조원으로 세계 3위…….

혹시, 카다피 정권이나 무바라크 정권과 같은 외국의 독재 정권들이 수십년간 스위스 비밀계좌에 숨겨둔 비자금을 합한 금액은 아닐까? 알고 보니 놀랍게도 한국 부자들의 자랑스러운(?) 이야기였다.

TJN에 따르면 조세 피난처(tax heavens)에 은닉한 검은 돈 규모가 중국 1조1,890억달러(1,308조원)과 러시아 7,980억달러(878조원)에 이어 한국이 7,790억달러(857조원)로 검은돈 동메달을 당당히 딴 나라다.

이 금액은 우리나라의 재벌 대기업과 슈퍼리치들이 지난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0년간 해외로 빼돌린 자산으로 2012년의 GDP인 1,272조원의 67%에 달한다. 매년 21조원씩 40년간 빼돌린 금액에 해당된다.

이에 대해 올해 초 발간한 ‘싸이 대통령(김준환저)’에 따르면 역대 정권의 비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한다. 또한 빼돌린 857조원에 대해 연 수익률을 3%로 가정하고, 30%의 소득세를 부과하면 대략 매년 약 8조원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국제조세조정에관한 법률(국조법)에 따르면 조세피난처는 법인의 부담세액이 실제 발생소득의 15% 이하인 국가 또는 지역을 말한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했다고 모두 부정한 거래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 친인척이나 재벌 총수 일가, 정치인, 고액 자산가들이 관련계좌를 가지고 있다면 구린내 나는 검은돈이나 조세회피의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파문이 일자 지난 16일 김 덕중 국세청장은 국회 기획재정위 업무보고에서 “ICIJ에 한국인 명단 제공을 요청했지만, 정부 당국에는 주지 않겠다는 답을 들었다”며 “다른 채널을 통해 계속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25일 김 청장은 대한상공회의소 초청에서 “해외투자를 가장한 불법 송금이나 비거주자로 위장해 국외 소득을 조세피난처로 은닉하는 등 지능적이고 은밀한 재산 해외유출 행위에 적극 대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세청이 2011년 6월부터 10억원이 넘는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해 시행중이다. 2011년 6월에 이루어진 해외 금융 계좌 첫 신고결과 신고 건수는 525건, 신고계좌 수는 5,231개, 신고금액은 총 11조4천8백억원으로 집계됐다.

개인의 경우 미국·캐나다·일본·홍콩·싱가폴, 법인의 경우에는 아랍에미리트연합·베트남·중국·미국·일본 순이었다. 금융계좌 유형으로는 예적금(95.7%), 주식(2.4%), 기타(1.9%) 순이었다. 신고된 국가들 대부분 조세 피난처가 아니어서 ‘해외금융계좌’ 신고제도의 당초 목적에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금번에 ICIJ에서 발표할 버진 아일랜드도 없었다.

‘싸이 대통령’ 책자엔 역대 정권하에서 고위층들의 부정부패와 비리, 불법과 탈법, 꼼수가 판친 실제적인 사례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2조 5천억원대를 돌려 달라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론스타가 버뮤다를 통해 외환은행을 불법 인수한 케이스다.

소위 ‘검은머리외국인’이라고 칭하는 한국계 투자자들이 버뮤다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론스타와 공동으로 외환은행에 투자한 의혹이 있다. 론스타가 애용한 버뮤다는 악명높은 조세피난처로 버진아일랜드를 지척에 두고 있다. 책을 보면 이 땅에 법과 정의가 과연 살아 있는지 생각조차 싫을 정도다.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제 국세청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나 제삼자가 제공하는 ‘꽁짜정보’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구태를 과감히 버려야 한다. 국조법 제31조(조세정보 및 금융정보의 교환)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또한 조세 미체결국가들에 대해서도 하루속히 조약을 체결해 정보교환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과 칸막이를 없앤 정보교류는 기본이다. 

어제 지하경제양성화를 위해 한국시민사회연합 시민감시단이 출범했다. 조세 정의를 세우고 세상을 맑고 밝게 하는 마중물 역할을 위해 시민단체들이 나선 것이다.

가수 싸이(psy, 싸이코패스의 줄임말)는 지난해 한 방송사 인터뷰에서 ‘지치면 지고 미쳤더니 어느날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부패전쟁에 미쳐야 이 나라의 미래와 제 2한강의 기적도 기대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정·부패없는 깨끗한 정부를 위해 매 정권마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를 척결키 위해 특별감찰관제와 상설특별검사제, 지하경제 양성화 등 조세정의 확립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사설에서도 밝혔듯이 박 대통령은 재임기간 내내 국경을 넘나들며 부패전쟁에 미친 강단있는 ‘싸이(psy) 대통령’이 되어주길 거듭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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