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원전 비리는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누적된 비리가 이제야 드러난 것이며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그리고 에너지는 혈액과 같아 필요한 곳에 공급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가 빈혈이나 혈액 순환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덧붙였다.
어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전기술 1급 이상 간부들이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일괄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한수원과 한전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등 4개 원전 공기업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2급(부장급) 이상 간부의 재산등록 및 청렴감사를 실시하고, 전 직원은 협력업체 비상장 주식 취득을 금지하며 보유 중인 주식도 매각토록 했다.
앞서 지난 7일 정부도 원전 공기업 직원의 유관업체 재취업 금지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원전업계 유착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안탑깝게도 연이어 내놓는 대책들만으로는 원전비리가 척결될지 의아스럽다. 12일 검찰 수사에서 원전 부품 제조·시험업체와 승인기관 등 3각 검은 뒷돈 커넥션이 ‘7인 대책 회의’를 통해 전모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밝혀진 ‘7인 회의’는 원전에 납품한 제어케이블 제조업체인 JS전선과 시험기관인 새한티이피, 승인기관인 한국전력기술 간부들이 참석하여 은밀하게 진행한 대책회의를 말한다. 제어케이블을 시험한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납품을 성사시키려고 성능검증 시험 성적서를 위조하기로 공모했다는 것이다(외환은행 불법매각도 10인 비밀대책회의에서 공모하고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을 봐주는 댓가로 도장값을 챙기고 금융당국이 문안을 불러 주는 대로 삼정 회계법인이 조작해서 작성하고 제출한 것이 밝혀짐).
그리고 원전 부품은 워낙 전문적인 분야로 내부 제보가 아니면 ‘완전 범죄’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다행인 것은 검찰이 이들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7인 회의 녹취록과 회의록을 확보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현재 진행중인 검찰 수사가 최종적으로 나와 봐야 비리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 레드휘슬과 더위로 부패 관리들은 잠못 이룬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올여름 전력수급 차질이다.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원전비리 재발방지 대책과 여름철 전력수급 대책에 따르면 모든 공공기관은 7~8월 2개월간 전력사용량을 지난해 여름철보다 15%까지 감축하고 피크시간대에는 20%까지 감축해야 한다. 문 열고 냉방 영업행위에 대해서는 피크시간대(14시~17시)에 특별 관리지역을 대상으로 주2회 점검을 실시하는 등 단속도 강화할 예정이다.
대형건물의 냉방온도 제한(실내 평균온도 26℃, 공공 28℃)과 냉방기 교차가동을 통한 냉방공급제한, 피크시간대 수도권 전철 운행 간격을 연장(30초~3분 연장) 등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시행한다.
가뜩이나 경제불황으로 짜증낼 일도 많은 국민들만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 어찌됐든 부패하고 비리에 찌든 공무원 덕분으로 올여름 에어콘은 일찍감치 멀리하고 대문과 방문 모두 활짝 열어 제치고 손풍기와 함께 보내야 될 것 같다.
원전비리에서 간과해선 안될 것은 반복되고 있는 7인 대책회의 검은 커넥션 구조다. 현재 검찰 수사와 무효소송이 진행중인 외환은행 사건에서 이미 재현되었다는 경천동지할 사실이다. 2003년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매각하면서 정부차원에서 사전에 은밀한 10인 비밀대책회의를 열었다. 하늘이 두쪽나고 백번양보해도 자격없는 론스타에게 매각 조건과 도장값을 챙기고 외환은행을 넘겨주기 위해서였다(아직까지 매각 관련자 누구하나 도장값에 대해 틀리다고 이야기한 적도 없고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서 감옥대신 승승장구 하고 있다). 당시 10인 회의에는 청와대를 비롯해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외환은행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원전 7인 회의에 비유하면 원전 부품 제조업체는 론스타를 대신한 외환은행, 시험업체는 법률대리인 로펌, 승인기관인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등 3각의 검은 뒷돈 커넥션이다. 10년이 지났지만 대책회의 비리 먹이 사슬은 놀랍도록 동일한 구조다. 외환은행 불법매각이 원전비리와 유일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청와대 관계자가 참석했다는 것과 회의 녹취록과 회의록이 없다는 것이다. 외환은행 매각은 원전비리 보다 철저하고 전격적으로 감행된 것이다.
기성세대들은 자수하여 광명찾자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고정 간첩 활동들이 한창일 때 귀에 익은 표어인데 요즘 다시 유행하고 있다. 정부가 원전비리 자진신고 및 내부 고발제를 도입하겠다고 천명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광명찾자는 자수자가 벌써 3명이나 나왔는데 진술내용이 구체적이고 신뢰할 만해 수사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는 슬프지만 반가운 소식이다.
정부는 원전비리 제보자에 대해서는 ‘공익신고자보호법’상의 책임감면 규정, 형법상 자수규정 등을 적용하여 법적책임을 감면하는 한편, 최고 1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현재 한수원이 가입한 익명 제보시스템 ‘레드휘슬(Red whistle)’에 원전비리 제보가 쇄도하고 있다. 원전비리는 최근 면직된 김균섭 한수원 사장 표현대로 익명의 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적발할 수 없는 고질적 구조다. 이번에 발각된 원전비리는 김 사장 이야기 대로 과거 역대정권에서 수십년간 부패한 관료주의 한국 사회에서 자행된 빙산의 일각일뿐이다.
◆ 원전사고와 금융참사는 동급 원자폭탄이다
레드휘슬은 보안과 익명성을 보장하는 반부패 시스템을 운영하는 업체로 현재 약 100여개의 기업·금용기관·공공기관 등이 가입돼 있다. 익명 제보자의 인터넷 IP나 스마트폰 등을 역추적할 수 없도록 해 제보자를 보호하는 일종의 보안 시스템이다. 이번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은 원자력안전위원회 신문고에 지난 4월말 ‘케이블 위조 제보’가 접수되면서 수면 위로 터져나왔다.
완전 범죄로 묻힐뻔 했던 원전 비리가 레드휘슬 덕분으로 되살아나 국민 안위와 생명을 구했다고 본다. 핵에너지를 군사적 목적에 활용한 것이 원자폭탄이며 연쇄반응의 속도를 조절하여 에너지원으로 활용한 것이 원자력발전이다. 원전부품의 하자로 발생할 원전사고의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은 상상하기 조차 싫다.
올해는 론스타 망령이 이땅을 휘저은 지 10년째다. 하지만 외환은행 불법매각은 아직도 국론분열의 중심에 있으면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 거듭 강조하지만 원전비리와 외환은행 불법매각은 사익을 챙기고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차원에서 원자폭탄급의 천인공로할 사태다.
정부가 이참에 7조원대가 넘는 외환은행 매각 비리 사건을 포함해 금융비리 척결과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공익신고자보호법’에 근거해 자진신고와 내부고발제를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 주었으면 한다. 에너지와 금융은 산업의 동맥이고 혈액같기 때문이다.
요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화제다. 안탑깝게도 세상엔 완전범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내외에서 제아무리 날고 뛰며 은밀하게 진행된 역외탈세도 외환은행 불법매각도 언젠가는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위대한 제보자가 있고 진실의 힘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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