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태어나도 존재없는 '유령아동'…출생아 관리체계 또 구멍

김영 기자

출생신고 없이 태어난 영아가 살해, 유기된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아동학대 예방체계의 '구멍'이 다시 드러났다.

정부는 영아가 '유령 아동'으로 방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아이의 출생을 지자체에 알리도록 바꾸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도입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2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은 전날 영아살해 혐의로 30대 여성 A씨를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다. A씨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아기를 출산하고 곧바로 살해한 뒤 자신이 살고 있는 수원의 한 아파트 냉장고에 시신을 보관해 온 혐의를 받고 있다.

22일에는 경기 화성시에서도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영아 사례가 확인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사라진 아기의 친모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에게 생후 한 달이 되지 않은 자녀를 넘겼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경찰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고 보고 경위를 파악 중이다.

이러한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태어난 사실조차 확인되지 않는 출생신고 체계 때문이다.

출생

신생아의 부모는 주민등록법상 출생 1개월 이내에 신고를 해야 하지만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을 뿐이다. 산부인과 등 의료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A씨는 남편에게 낙태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남편은 이 말을 믿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생신고 의무가 부모에게만 부여돼 있는 상황에서 출생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사망 파악이 안된 것이다.

이번 사건들과 유사하게 태어났지만 존재가 없는 '유령아동' 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생후 76일이 지난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않아 영양결핍으로 숨지게 한 친모가 구속됐는데, 미혼모인 친모는 출산 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었다.

2021년 1월에는 8살 딸을 살해한 혐의로 친모가 구속됐는데, 숨진 아동은 출생 신고가 안 돼 있어서 지자체나 교육당국 등의 아동학대 예방 체계에서 걸러지지 않았다.

이번 수원 사건은 감사원이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 과정에서 '출산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 사례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 중 일부에 대해 아동의 무사 여부를 지자체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감사원은 지난 2015년부터 작년까지 8년간 출산 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아는 2천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복지부는 이렇게 아동들이 행정상 '투명인간'으로 살면서 학대 예방 및 단속체계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 의료기관이 지자체에 출생 사실을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추진이 더딘 상황이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이 아동 출생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전산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시·읍·면장에게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 4월 13일 윤석열 정부의 아동정책 추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는 유엔아동권리협약도 명시하고 있다. 이 협약 7조는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되어야 하며 출생할 때부터 이름을 갖고 국적을 취득하며 가능한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 받을 권리가 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행정부담과 시스템상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 등을 들며 반대하고 있다. 출생과 동시에 의료기관에서 자동으로 출생 통보를 하게 되면, 일부 임신부의 경우 병원 출산을 꺼려 병원 밖에서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의료계에서 나온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4월 17일 성명을 통해 "아동보호를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의료기관에 떠넘기는 것이 기막히고 국가의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정부는 의료계와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해 논의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출생통보에 대해 수가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족관계 등록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며 "의료계를 계속 설득하면서 의료계가 행정적으로 최대한 편리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역 당국이 아동의 필수 예방접종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이를 '유령 아동' 발굴이나 아동학대 예방에 활용할 수도 있지만, 이런 정보가 지자체에 통보돼 활용으로 이어지는 체계는 미진하다.

정부는 지난 4월 발표한 대책에서 필수 예방접종을 하지 않았거나, 최근 1년간 의료기관 진료를 하지 않은 만 2세 이하 아동 약 1만1천 명에 대해 석 달간 집중 전수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은 데다 상시 조사 체계도 갖춰져 있지 않다.

감사원은 신생아가 태어나자마자 주민등록번호 없이도 반드시 맞아야 하는 B형간염 백신 접종 정보와 의료기관의 정산 청구 정보를 통해 출산 후 미신고 영아 2천여명를 파악했는데, 당당 부처인 질병관리청이 이를 알아내 조치하지 못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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