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칩 제조사 넥스페리아의 중국 공장에서 발생한 수출 중단 사태가 전 세계 자동차 공급망에 또다시 큰 혼란을 야기했다.
이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와 2021년 일본 공장 화재 이후 자동차 업계가 공급망 강화에 대한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가형 범용 반도체의 취약점을 간과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업계가 지정학적 리스크에 여전히 대비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저가 반도체’가 촉발한 지정학적 병목
넥스페리아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중국 윙텍(Wingtech)이 소유한 기업이다.
네덜란드 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본사 통제를 시도하자, 중국은 즉각 대응했다.
둥관 공장에서 포장된 반도체의 해외 수출을 중단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압박한 것이다.
이 칩들은 차량 브레이크, 전동 창문 등에 쓰이는 일반 부품으로, 개당 가격은 극히 저렴하지만 공급 차질은 닛산, 혼다, 보쉬(Bosch) 등의 생산 감축으로 이어졌다.
24일(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폭스바겐·볼보·ZF·헬라 등이 수주일 내 재고 소진 가능성을 경고하며 비상 대응에 들어갔고,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는 “수 주 내 재고 고갈 시 생산 중단 가능성”을 공식 경고할 정도로 긴장감이 높았다.
▲ 공급망 다변화 실패…자동차 산업의 구조적 취약성
코로나19 이후 완성차 기업들은 '공급 다변화'를 강조했지만, 이번 칩 부족 사태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과거의 충격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재고를 최소화하는 ‘적시 생산(Just-in-time)’ 재고 관행에 의존해왔다.
일부 유럽 완성차 업체는 가격이 싸고 구하기 쉬운 부품이라며 대체 공급처도 마련하지 않았고, 보쉬는 연간 2억 유로 규모의 구매를 진행했음에도 대체 칩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재고 관리 방식인 ‘저스트 인 타임(JIT)’이 이러한 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작용했다.
전문가들은 “공급망 재구축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위기 대응력 강화를 위해 지역 내 재고 보유와 재고 확대를 조언하고 있다.
▲ 위기의 또 다른 차원: 위안화 결제 강제
위기 상황에서 넥스페리아 중국 공장은 일부 국내 유통업체에 한해 판매를 재개했지만, 결제는 위안화(CNY)로만 가능하다는 조건을 걸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 메렉스, JABIL 등 일부 업체는 중국 법인을 통해 위안화로 물량을 확보하는 ‘우회 조달’에 나섰다.
이는 중국 내 운영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되며, 외화 거래가 불가능한 일부 해외 고객은 칩을 확보하지 못한 채 생산 중단 위기에 직면했다.
이후 중국이 일부 수출 재개를 허용하면서 위기 국면은 다소 완화됐지만, 다국적 기업의 본사와 현지 공장 간의 이해관계 충돌과 통화 결제 방식의 리스크가 새롭게 부각됐다.
▲ 완성차 업체 간 대응 차이…도요타는 예외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가 타격을 입었지만, 예외도 있었다.
도요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체 개발한 ‘BCP(사업 지속 계획)’에 따라 수개월치 반도체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다.
이는 ‘위기에 대한 기억과 준비’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 부품 호환성 문제…칩 하나 바꾸기도 수개월 소요
넥스페리아의 칩은 대부분 차량 부품에 납땜(soldering) 방식으로 직접 통합되어 있어, 대체 제품으로 교체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히 규격이 맞는다고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차량 내 신뢰성과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한 테스트가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에 따라 독일 헬라(Hella) 등 주요 부품사들은 대체 공급처 확보에 나섰지만, 테스트 및 인증 절차로 인해 즉각적인 대처가 어려운 실정이다.
런던 펠햄 스미더스 어소시에이츠의 줄리 부트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지난 위기 이후 그들이 (칩에 대해) 몇 달 치 재고를 보유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닛산 최고성과책임자(CPO) 기욤 카르티에는 "취약한 공급망을 대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라며 "모두가 '과거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말할 것을 알지만, 3년 만에 모든 공급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느냐"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 회복탄력성의 대가…더딘 변화, 비싼 비용
전문가들은 이제서야 “공급망 다변화와 회복탄력성 확보”라는 담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용 부담과 운영 구조상의 복잡성 때문에 변화가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앙쿠라 컨설팅의 알프레도 몬투파르-헬루는 "넥스페리아 사건은 제조업체의 전략적 취약성이 첨단 부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라며 "다시 레질리언스를 이야기하겠지만, 얼마나 비싼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평가와 전망…‘로우테크 리스크’ 직시해야
이번 넥스페리아 사태는 자동차 공급망이 단지 첨단 반도체나 희귀 금속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드러냈다.
저가·범용 칩이 ‘지정학적 무기’로 전환되었고, 글로벌 기업들의 분산된 운영 구조와 부족한 위기 대응 체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경고다.
앞으로 자동차 산업은 단순한 공급망 재구축을 넘어, 정치·통화·기술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 수립이 필수적이다.
신뢰 가능한 2차 공급처 확보, 지역별 재고 확보, 부품 구조의 표준화 및 호환성 강화 등의 장기 전략이 없이는, 유사한 위기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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