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성장하면 손해’…기업 성장 페널티에 GDP 111조원 손실

음영태 기자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핵심 원인으로 기업 규모에 따라 혜택은 사라지고 규제만 늘어나는 이른바 '성장 페널티(Growth Penalty)'가 지목됐다.

고용과 매출이 늘어날수록 조세 부담과 규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탓에, 우리 기업들이 성장을 멈추고 영세한 수준에 안주하는 ‘피터팬 증후군’이 국가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저해한다는 분석이다.

▲ 규제 피하려 '안주 전략'…GDP 111조 원 손실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가 20일 발표한 '한국 경제의 저성장 원인 진단과 기업생태계 혁신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와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결합되어 발생하는 한국 경제의 GDP 손실액이 약 4.8%(작년기준 111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우리 경제가 최근 3년간 일궈온 경제성장분 전체를 상회하는 규모다.

기업들이 50인 또는 300인 등 규제 장벽을 넘지 않기 위해 인위적으로 기업을 쪼개거나 성장을 멈추는 ‘안주 전략(Bunching)’을 택하면서, 경제 전체의 자원 배분 효율성이 극도로 악화된 결과다.

기업
[연합뉴스 제공]

▲ 소기업 안주 비율 60% 육박…멈춰버린 '성장 사다리'

SGI는 기업 규모별 차등 규제가 우리 경제의 신진대사인‘진입-성장-퇴출’의 선순환을 막고 기업생태계를 영세 소기업 중심으로 굳어지게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기업이 5년 뒤에도 여전히 영세한 규모(10~49인)에 머무는 비율은 최근 60%에 육박했다.

이는 1990년대(40%대) 대비 급격히 상승한 수치로, 기업들이 성장을 도모하기보다는 규제 회피 등을 위해 현재 상태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졌음을 시사한다.

소기업이 중견·대기업으로 올라서는 성장 사다리도 끊어졌다.

SGI는 “소기업이 중규모 기업으로 도약할 확률은 과거 3~4%에서 최근 2%대로 반토막 났고,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확률은 0.05% 미만으로 떨어져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졌다”고 진단했다.

경쟁력을 잃은 기업조차 시장에서 나가지 않는 퇴출의 병목 현상도 심각하다.

보고서는 “과거 60%에 달했던 퇴출률이 최근 40% 밑으로 떨어졌다”며 “이는 좀비 기업들이 한정된 인력과 자본을 붙잡고 있어, 혁신 기업으로 흘러가야 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는 자원 배분의 동맥경화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저생산성 고착화… OECD 최고 수준의 '소기업 고용 비중'

한국의 고용 구조는 선진국과 정반대의 기형적 형태를 띠고 있다.

생산성이 높은 대기업이 고용을 주도하는 OECD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대기업 생산성의 30.4% 수준에 불과한 소기업이 전체 제조업 고용의 42.2%를 책임지고 있다.

이는 OECD 평균(22.7%)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정작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대기업(250인 이상)의 고용 비중은 28.1%로 OECD 평균(47.6%)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어, 국가 전체적인 저생산성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대한상공회의소 제공]

▲ "성장이 곧 혜택으로"…기업 생태계 혁신을 위한 3대 제언

SGI는 기업 생태계의 역동성을 회복하기 위해 지원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을 제언했다.

첫째, 단순 업력 중심이 아닌 혁신 성과에 따라 지원을 결정하는 'Up-or-Out(성장 아니면 탈락)'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담보 대출 위주의 자금 조달에서 벗어나 CVC 규제 완화 등을 통해 '투자 중심의 모험자본'이 유입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기업 규모에 따른 계단식 규제를 철폐하고 국가 경제 기여도에 비례해 혜택을 주는 '성장 유인형 조세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대한상의 SGI 김천구 연구위원은 “차별적 규제가 기업의 손발을 묶는 족쇄라면, 경직된 노동시장은 그 충격을 확산시키는 증폭기”라며, “규제와 조세 제도의 과감한 재설계를 통해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유인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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