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헨티나에 건너가 태권도를 가르치며 상류층 삶을 누리던 공명규, 어느 날 탱고를 접하면서 공명규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겼다.
많은 이민자가 모여서 부둥켜안고 발로 차며 서로의 상처를 감싸고 아픔을 나누면서 탄생한 탱고춤, 남녀노소, 민족, 계층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모여서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아리랑'은 우리 민족만의 춤이지만 탱고는 전 세계에서 추고 있어요. 아르헨티나 탱고지만 아르헨티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민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고 반주 악기인 반도네온도 독일 이민자가 들고 온 것입니다. 이 탱고를 가져다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은 자기와 다른 것은 잘 받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한 공명규는 "좋은 것을 보면 함께 반응하고 인정하고 배우려고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공연 때도 '괜찮다 생각하시면 박수도 치고 환호도 지르고 스트레스 풀고 가시라'고 말했던 거죠"라고 밝혔다.
공명규가 말하는 탱고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탱고는 연주와 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악보마다 가사가 있습니다. 저희는 그 가사를 다 외우고 몸을 움직여 가사 내용을 표현합니다. 반주자가 악보를 연주하면 저희는 음악 속에 들어가 가사 역할을 해주는 거죠"라는 것이 공명규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라 쿰파르시타'를 예로 들며 "이는 '가장행렬'인데 장례 행렬이에요. 우리가 많이 봐왔던 것은 남자가 입에 장미를 물고 머리를 흔들며 여자와 춤을 추는 장면이지만 그 게 아니거든요. 모르는 것은 배우고자 해야 하는데 그렇게 와전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라고 일침을 가했다.
"며칠 전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전 악보와 가사 등 탱고에 관련된 이 모든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탱고가 뭔지 제대로 알릴 겁니다"
가사가 있다는 탱고, 그러나 많은 관객은 그 가사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다 음악감수성이 뛰어나 연주를 듣고 가사를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탱고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까?
공명규는 "탱고 공연은 가수가 따라가요. 하지만 이번 '피버 탱고2: Feelings'에서는 가수를 제외시켰습니다. 우리 언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못 알아듣잖아요. 때문에 더욱더 무용수들 하나하나의 발놀림과 몸동작으로 그 가사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번 공명규의 '피버 탱고2: Feelings' 공연을 관람한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적어도 몇 군데는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공명규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등장, 갈매기 울음소리 처량한 바닷가에서 혼자 몸부림치며 뭔가를 찾아 헤매는 '홀로 왔다 홀로 가는 나그네' 인생을 그린 작품이다. 춤 중간에 그의 파트너 가르시아 사브리나가 잠깐 등장하지만,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유일한 사람마저 그를 두고 떠나고 또다시 홀로 남겨지고 조용히 죽어가는 '한 남자'…

이 밖에도 세 쌍의 커플이 탱고를 추며 의상을 갈아입는 마법 같은 공연을 기억할 것이다. 북한에서 많이 하는 이 공연을 아르헨티나 무용수들이 탱고로 표현해냈다는 것에서 무용수이자 안무, 연출 등 전반 기획을 도맡은 공명규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인다.
몸동작으로 가사를 대신하는 만큼 파트너와의 호흡도 중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탱고의 파트너는 어떻게 선택할까?
"네, 그렇습니다. 탱고는 호흡이 중요합니다. 제가 파트너를 뽑는다고 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줄을 섭니다(웃음). 가르시아 사브리나는 나이가 어린 친구지만 어려서부터 춤을 췄고 부모님도 모두 무용수입니다. 탱고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 훌륭합니다"
태권도 사범에서 아르헨티나 탱고 홍보대사로 살기까지 그 과정이 궁금했다.
아르헨티나에 건너간 지 6년째, 공명규는 태권도 사범에서 골프로 직업을 옮겼다. 아르헨티나 PGA 프로골퍼로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이 모든 것은 그가 탱고를 한국에 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그때 당시 가족에게 한국으로 돌아가 탱고를 전하고 싶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골퍼로 잘 나가니 '합숙을 한다. 시합을 한다' 등 이유로 탱고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거죠"
오랜 준비 끝에 동양인 최초로 탱고 마에스트로 칭호를 획득한 공명규는 1997년 드디어 탱고 무용수들과 함께 고국을 찾았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외면과 냉대, 게다가 IMF 사태까지 벌어졌던 것.
"저는 한 사람이 한 분야에 십 년을 투자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13년 동안 탱고를 전하고자 뛰어왔지만, 아직도 전 스폰서 한 명 없습니다. 태권도가 오히려 쉬웠어요. 힘으로 치고 올라가면 되니깐요. 탱고를 알리는 길이 더 힘들지만 십 년을 버티자는 생각으로 왔죠. 한마디로 오기죠!"
이렇게 가족을 떠나 또다시 고국에서 '이방인'이 된 공명규, 그동안 그가 아르헨티나와 한국을 오가면서 탄 비행기 티켓만 모아도 강남에 아파트 몇 채는 지을 수 있었단다.
공명규의 노력은 아르헨티나의 인정을 받았다. 2003년에는 아르헨티나 탱고홍보대사로 위촉돼 아르헨티나 세계 3대 공연장인 국립극장 세르반테스에서 동양인 최초로 공연도 할 수 있었으며 아르헨티나 국회의장으로부터 표창상을 수여받았다.
2년 전인 2007년, 아르헨티나 오리지널 탱고팀을 초청해 한국에서 공연했을 당시 좌석점유율 90%에 달하며 대박성공을 이루었다. 공명규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공명규는 '피버탱고2'를 기획하고 준비에 착수했던 것. 실질적으로 안무 연습에 들어가 준비하는 데만 6개월이란 시간이 걸렸다.

"전 이번 공연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그렇지만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이것이 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 쏟아부어요. 이번 공연이 끝나면 바로 2년 후를 위해 준비하려고요. 2011년이면 한국과 아르헨티나 수교 50주년이에요. 그때는 인사동이나 서울 어디에 '탱고거리'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에게 진정한 탱고를 알리고 싶어요. 그때 가면 이명박 씨와 대화할 거예요(웃음). 나름 열심히 하니 일본에서 먼저 연락이 왔더라고요. 같이 일해보자고 해요. 한국과 일본이 서로 안 좋은 감정이 있지만, 춤으로 부드럽게 풀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 공명규는 "전 생각한 것은 반드시 이루는 사람이에요"라며 자신의 소신과 결심을 한 번 더 강조했다.
커피 한 잔의 시간, 공명규와의 대화를 통해 탱고에 대해 인간 공명규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왜 이렇게 혈혈단신(비록 제자들이 있다고 하지만)으로 조국에 탱고를 알리고자 하는지 여전히 아리송했다.
"일본인들은 아르헨티나에서 탱고로 보이지 않는 정치를 해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미국은 아르헨티나를 제일 강력한 라이벌로 보고 있어요. 아르헨티나는 천혜의 땅이에요. 곡식 밭이 끝없이 펼쳐졌고 거기서 나는 곡식과 와인 등은 좋고 싸니까 세계 각 나라에 수출되죠"
한참 동안 아르헨티나의 우월한 지리조건과 매력에 대해 설명하던 공명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식량전쟁'이 일어날 거에요. 우리(한국)가 아르헨티나와 좋은 관계를 맺는다면, 우리도 일본인들처럼 탱고를 하면서 그들과 친해진다면 많은 일에서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IMF 때 한국은 반지 빼서 나라를 구했지만, 아르헨티나는 탱고로 나라를 구했어요"라고 밝혔다.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13년이란 긴 세월동안 모든 것을 바쳐 전하고 있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아닌 그 본질에는 조국에 대한 깊은 사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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