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제7회 핀터페스티벌 ‘해롤드 핀터의 사랑 뒤에 숨은 것들~’

동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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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부터 11월 15일까지 서울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제7회 핀터페스티벌이 개최된다.

해롤드 핀터의 작품이 한국에 소개된 지 40년. 그는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특별함을 가진 극작가이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부조리 극작가로 일컬어지며 도발적인 소재와 사실적인 글쓰기 그리고 일상의 숨겨진 이면을 주목하는 독특한 작가이다. 우리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해롤드 핀터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연극의 기본을 되살린 작가’라는 평을 들으며 200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실재적인 것과 실재가 아닌 것 사이의 확연한 구별은 없으며, 진실인 것과 거짓인 것 사이에도 그런 구별은 없다. 어떤 것이 필연적으로 진실하거나 거짓일 수는 없고, 진실할 수도 거짓일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가 예술을 통한 실재 탐구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생각들은 그의 모든 작품에 오롯이 녹아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최신 시나리오인 <추적>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200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그렇지만 그는 관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 글을 쓰면서 관객은 운이 좋다고 말하는 건방진 태도로 평생 작품을 써왔다. 이 때문인지 그의 작품엔 세월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는 핀터만의 빛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영미문화권에서는 ‘예술가들에게 스타일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작가’로 인식되며, '핀터식 pinteresque'이라는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핀터극의 특징은 바로 "생략 three dots(…), 사이 pause, 침묵 silence"으로 부터 시작된다.  핀터의 극은 모호하다. 그 어떠한 것도 확실하지 않으며, 인물간의 갈등이 어디에서부터, 왜 시작되는지도 불분명하다. 그 모호함은 바로 극의 곳곳에 존재하는 ‘생략’, ‘사이’, ‘침묵’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로인해 파생되는 울림이나 묘한 긴장감은 일상의 부조리함을 더욱더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평범한 인간관계의 권력의 게임을 주로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서 간결한 언어와 문장의 반복은 극적 긴장감과 음악적 리듬감을 제공한다. 친숙하고 일상적인 말들은 여러 겹의 감정과 의도로 가득 차 있어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말이 없는 ‘사이’와 ‘침묵’, ‘......’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넘친다. 그의 극에서 ‘사이’와 ‘침묵’은 사실상 말 없는 대사이며, 그 안에 하나 이상의 사실과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것을 찾는 것이 바로 핀터극의 묘미이자 모든 이들이 핀터극에 빠져들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등장인물들의 갈등 속에서 핀터식의 "사랑 뒤에 숨은 것들"이란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 주요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몇명의 연출가들이 모여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출해내는, 갖가지 묘미를 가지고 있는 해롤드 핀터의 매력을 찾을 수 있는 국내 유일무이한 작가 페스티벌이 바로 핀터페스티벌이다. 2002년에 처음 개최되어 7회를 맞이하는 올해는 지난해 그가 타계한 이후 처음 갖는 핀터페스티벌이기 때문에 각 연출가들의 각별함이 더해진다.

올해 선정된 작품은 <애인 The lover>, <컬렉션 The collection>, <핫하우스 The hothouse>, <그때는 Old Times>으로 핀터식 '사랑 뒤에 감춰진 것들'을 찾아내는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올 핀터 페스티벌의 첫 막을 여는 작품은 극단 천지의 ‘애인 The Lover’ (연출 장경욱, 10월 20일- 25일)

핀터의 작품 중 가장 에로틱한 작품으로 한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자아와 본능적 자아 사이의 필연적인 갈등과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 <애인>은 사실주의적 스토리 전개에 익숙한 관객에게 진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의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면서 사실주의와 부조리의 경계를 해체한 작품으로 어느 중년 부부의 러브게임을 통해 사회적 자아와 본능적 자아 사이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두 번째 작품 극단 마루의 ‘2009 컬렉션 The Collection’(연출 황두진, 10월27일-11월 1일)

<콜렉션>은 1961년 BBC TV방송으로 처음 방영되었고, 그 후 1962년 연극 무대에서 첫 선을 보였다. 한 쌍의 동성커플과 한 쌍의 부부, 이들은 모두 패션디자이너들이다. 드레스 콜렉션 때문에 방문한 제주에서 쥬노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다는 다연의 고백을 확인하기 위해 나서는 주영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서로를 만나 이야기 할수록 사실의 확인은 막연해지고 네 사람의 관계는 점점 얽히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연의 고백과 진짜 있었던 일의 사실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한다. 진실은 한 가지 일뿐이라 생각했던 이들 앞에 여러 개의 진실이 다가오게 된다.

세 번째 작품 극단 루트21의 ‘핫 하우스 The Hothouse’(연출 박재완, 11월3일-11월 8일)

<핫 하우스>는 정치적 전복을 노리는 개인적 술수가 난무하는 극이다. 수직적 인간관계 망 속에서 신분탈취와 지위상승을 엿보는 하부구조와 이에 맞서는 상부구조. 이들은 신분과 지위, 그리고 그것이 정한 관계망을 보이지 않는 무기로 휘두르며 하부구조를 손아귀에 넣고서는 원하는 대로 주무르려는 욕망을 가진 자들인데, 이 둘의 관계에 따라 입장이 뒤바뀌는 양상을 띠면서 심리적, 언어적, 신체적 마찰게임이 치열하고도 숨 막히게 전개된다.

네 번째 작품 극단 물결의 '그 때는… Old Times'(연출 송현옥, 11월10일-11월 15일)

핀터의 세계는 냉혹하고 허무한 현대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는...>은 부부 사이와 친구 사이를 조망한다. 그러나 이들 관계는 통념상 가장 가까워야 하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권력 다툼이 팽팽하게 이루어진다. 또한 친구와 남편 또는 아내는 자신이 그 동안 상상하지도 못했던 낯선 존재로 다가온다. 이들은 서로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마치 영화에서의 카메라의 시선과 같이, 응시를 통해서 상대방을 제압한다. 또한 감독이 영화를 편집하고 재구성하듯 자신의 현실 상황과 과거의 기억마저도 편집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그림으로 만들고자 한다. 결국 과거의 진실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진실이란 현재 파워가 있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그림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여운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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