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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자성을 통해 재기 하려는가. 대학에서 인문학과가 폐지되고 교수들은 인문학의 위기를 고한 선언문을 발표했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면서 인문학이 위태위태한 자태를 보이더니, 요즈음은 인문학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러트러스大의 커트 스펠마이어(Kurt Spellmeyer) 교수가 「인문학의 즐거움」을 출간했다. 현 인문학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았으며, 앞으로 인문학이 나가야 할 길도 제시했다.
저자는 인문학의 고립이 스스로 자초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인문학은 (미국에서 19세기 경) 전문화의 길을 택하면서 '전문화=학문적'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채택해 텍스트에 몰입하기 시작했고 이는 현실과의 괴리라는 결과를 낳았다. 텍스트 중심의 이론이 성행하면서 결국 인문학은 고립되었고, 자연과학 사회과학 사이의 학문적 대화는 끊어졌으며, 결국 인간 자신도 인문학에서 소외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 인문학의 위기가 물질에 집착하는 사회에 있다는 통상적 원인분석과는 사뭇 다르다.
저자가 제시한 해법은 '인문학자들이 스스로 닫은 문을 다시 열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좁은 세상의 범주 안에 안착한 인문학이 특권의식을 버리고 변화해야 하며, 스스로 쌓은 벽을 허물고 대중에게 스스로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틀을 깨고 세상과 만나야 한다고도 강조하며, 이것만이 인문학이 앞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인문학에 위기가 있을 수는 있으나 인간이 사유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이상 인문학 자체가 사라질 순 없다. 인문학이 인간과 인간의 문화에 관심을 갖는 학문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도 철학이나 수사학 등 인문학은 존재했고, 현재에도 그 이름을 달리할 뿐 인문학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단지 기술의 발전속도를 정신이 따라가지 못해 부끄럽게도 인간이 흔들린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인간존재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더욱 요구되며 그렇기에 인문학의 중요성은 다시 부각된다. 인문학이 위기가 곧 사회의 위기, 인간의 위기라는 말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저자는 이제 새로운 인문학을 제시한다. 인문학은 삶의 예술이어야 하고, 이때의 예술은 비평, 철학, 역사 같은 것이 아닌, 경험으로서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단순히 텍스트에 몰입하고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관되는 것, 작은 세계들이 모여 모든 것과 연관을 맺는 것, 이것이 인문학의 방향이라고 말한다.
또 학문이란 삶을 지속시키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인문학의 본질 역시 텍스트의 비평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연결된 예술적 활동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인문학이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곳은 천 년 전의 과거도 천 년 후의 미래도 아닌 부서지기 쉽고 두렵기도 한 바로 지금의 이 세상이라고 지혜롭게 제언한다.
저자 커트 스펠마이어(Kurt Spellmeyer)는 미국 러트러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러트거스대학교 작문 프로그램 디렉터로 연구와 교수(teaching)를 훌륭히 결합한 것을 인정받아 2004년에 영문학 교수로는 처음으로 Faculty Scholar-Teacher Award를 받았다. 학생들로부터는 '흥미 없던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교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저서로는 『Common Ground: Dialogue, Understanding, and the Teaching of Composition』, 『The New Humanities Reader』, 『Instructor's Resource Manual: The New Humanities Reader』 등이 있다. 출판사 휴먼앤북스│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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