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사라질 때가 왔는가, 다 자란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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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아이들(idol) 그룹 소녀시대 신곡 ‘런 데빌 런(Run Devil Run)’ 스토리 버전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섹시하고 도발적인 ‘블랙소시’ 이미지의 화룡점정이다. 이미 ‘런 데빌 런’은 멜론, 도시락, 벅스, 몽키3 등 각종 온라인 음악사이트에서 주간차트 1위에 올랐다. 2집 리패키지 앨범 ‘런 데빌 런’ 역시 한터, 핫트랙스 등 음반판매량 차트 1위를 차지했다.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에도 ‘초반 싹쓸이’를 보장하는 소녀시대 효과가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소녀시대의 ‘블랙소시’ 변신은 분명 의문거리를 남긴다. 한국 여성 아이들그룹 속성에 비춰보면 사실상 그 의문에 대한 답도 나온다. 소녀시대 팬덤에게는 그리 유쾌한 답이 아니다.

먼저 소녀시대의 속성부터 다시 파악해보기로 하자. 소녀시대는 ‘여성 아이들그룹’이라는 일반통칭 내에서 다시 한 번 분류된다. 소녀시대는 ‘소녀 아이들그룹’이다. 멤버 전체가 10대 때 데뷔했다. 제일 어린 멤버 서현은 데뷔 당시 16세였다. 데뷔 당시 멤버 셋이 25세, 가장 어린 멤버 가인만 19세였던 브라운아이드걸스 등과 크게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이만 어리다고 따로 ‘소녀 아이들그룹’이라 칭하는 건 아니다. 소녀 아이들그룹은 일반 여성 아이들그룹과 전략 자체가 다르다. 소녀 아이들그룹은 ‘성장’ 이미지를 판다.

방식은 간단하다. 처음 데뷔시킬 땐 확연한 ‘소녀’ 이미지로 잡는다. 세상물정 하나 모르는 동화 속 공주님들이다. 1차 활동이 끝나고 일정기간 공백기를 가진 뒤 2집 앨범에선 그보다 조금 더 성장한 ‘숙녀’ 이미지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과장을 보여주다 공식 3~4집 언저리에서 ‘성인여성’으로 돌변한다. 자신의 성적 가능성을 깨닫고, 그걸 과시하기까지 하는 도발적 여성상이다. 물론 멤버들 연령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게 아니니 ‘전략’이라 칭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불과 3~4년 사이 완성된다. 과장된 성장 연출이다.

이런 전략을 사용하는 근거는 뚜렷하다. 일단 남성층엔 이 같은 전략이 ‘원래’ 먹힌다. 특히 대중문화 소비에 열성적인 계층이 그렇다. 이를 ‘히긴스 콤플렉스’라 칭하기도 한다.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에서, 천방지축 슬럼가 소녀를 성숙한 상류사회 여성으로 키워내며 그 과정을 즐겼던 나이 지긋한 언어학자 이름을 땄다. 한편 이런 심리에 착안, 일본 컴퓨터게임 메이커 가이낙스는 1991년 ‘프린세스 메이커’라는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들어내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5편까지 등장한 이 시리즈는, 플레이어가 어린 소녀의 양아버지가 돼 성인여성이 되기까지 양육하는 내용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다.

반면 여성층은 소녀들의 성장 이미지에서 모종의 동경 심리를 갖게 된다. 아이들 주 소비층인 청소년층에 있어 성장, 특히 외형상의 성장 욕구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강하다. 또래임에도 실제보다 과장시켜 연출된 성장 모습에 자극받는다.

이 전략의 효용성은 국내에서도 이미 검증된 바 있다. 1990년대 후반 1차 아이들 붐 당시 소녀 아이들그룹 S.E.S. vs. 핑클 구도에서다. S.E.S.는 꽤 신경을 많이 쓴 그룹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장 괜찮은 곡들이 S.E.S.에 간다’는 속설까지 있었다. 그래서 음반판매에 있어서는 대부분 S.E.S.가 핑클보다 우세했다.

그러나 대중 반응에 있어서는 핑클이 월등히 앞섰다. 핑클이 등장했다 하면 TV프로그램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핑클 효과’까지 일으켰다. 전략상 차이는 하나였다. 핑클은 S.E.S.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성장 이미지를 팔았다. 1집 ‘블루 레인’ 때는 그저 어린 소녀들처럼 보였지만, 크게 히트했던 2집 ‘화이트’와 2.5집 ‘스페셜’에서는 이효리를 중심으로 보다 성숙한 숙녀 이미지를 택했다. 그러다 3집 ‘나우’에서는 현재 ‘블랙소시’ 같은 도발적 성인여성 이미지로 갈아탔다. 이에 반해 S.E.S.는 대체로 처음의 요조숙녀 이미지를 꾸준히 유지한 편이다. 대중의 숨은 욕구가 반영되지 못했다.

SM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소녀시대를 놓고 바로 이 성장 이미지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 ‘다시 만난 세계’가 소녀 버전이라면, ‘지’에서는 그보다 약간 더 성장한 숙녀 버전, ‘소원을 말해봐’는 남성층의 ‘제복 콤플렉스’를 자극할 정도로 성숙한 버전, ‘오!’에서는 직접적으로 ‘오빠’를 외치며 이성에 눈 뜨는 버전, 곧바로 ‘블랙소시’에선 완연히 성숙한 여성들로 급성장시켰다. S.E.S. vs. 핑클 구도에서 밀렸던 한을 소녀시대에서 푸는 셈이다.

문제는 성장 이미지 전략에서 최종단계인 ‘성인여성’까지 이르면, 해당 그룹의 생명력은 끝나버린다는 데 있다. 핑클도 그랬다. 3집에서 이미 최종단계에 이르다보니 더 보여줄 것이 없었다. 성장이 끝나고 나면 남는 건 노화뿐이다. 그래서 4집 ‘영원’부터는 바로 퇴조로 접어들었고, 곧 활동중지에 들어갔다.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소녀 아이들그룹이 성장해 성인이 되면, 그 다음부터는 일반 여성 아이들그룹 전략으로 수정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질 않는다.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로 순탄히 커리어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딜레마와 같다.

아역배우에 요구되는 조건은 성인배우의 그것과 다르다. 외형상으로는 대부분 크고 둥근 눈에 전체적으로 동그스름한 얼굴형이 인기다. 반면 성인배우는, 남성의 경우 요샌 가늘고 긴 눈에 뾰족한 얼굴형이 인기다. 그 밖에 이미지 조건도 다르다. 아역배우는 ‘아이다움’을 강조할수록 인기가 있지만, 성인배우는 그런 어린 시절 이미지가 없어야 신비감을 얻게 된다. 한 마디로 ‘아이는 아이답고’ ‘성인은 성인다워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 다만 대중 판타지는 이에 서로 다른 조건을 요구한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소녀 아이들그룹도 그렇다. 애초 ‘소녀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성된 그룹이다. ‘소녀’ 역할을 맡았을 때 가장 효과적인, 청순함과 순진무구함을 과장되게 드러내주는 멤버들이다. 이들이 커버할 수 있는 한계는 기껏해야 소녀인지 성인여성인지 아슬아슬한 선까지다. 거기까진 롤리타 콤플렉스 자극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을 급속 성장시켜 성인으로 만들어 버리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즉시는 급작스런 퇴폐 모드에 화제성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대로 장기 승부는 힘들다. 성인 여성 아이들그룹 멤버에 요구되는 조건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소녀시대의 ‘블랙소시’ 변신은 남달리 여겨질 수밖에 없다. 소녀시대의 상품가치가 한계까지 왔다고 판단, 곧바로 ‘최종단계’를 밀어 넣어 그룹을 ‘깨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멤버들 중 몇몇은 살아남을 수도 있다. 우연찮게 성인여성 이미지에도 적응할 수 있는 멤버들이다. 그러나 소녀시대 전체는 힘들다. 핑클도 그랬다. 애초 성인적 풍모를 보이며 아릿한 섹시 코드로 관심을 끌었던 이효리만 아이들로서 살아남았다. 핑클 자체는 깨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 상황은 살아남을 수 있는 몇몇 멤버만 개별 활동으로 유보해두고, 소녀시대 자체는 깨던가 아니면 극도로 활동을 축소해 유명무실 상태로 만들려는 전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이들그룹이라는 게 팬들 바람처럼 천년만년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길어야 4~5년이 한계다. 소녀시대도 애초 그런 운명이었고, 나아가 모든 아이들그룹이 그렇다. 소녀시대 정도면 그래도 멤버들 각자의 개별 활동 가능성은 한 번씩 다 검토해본 상황이다. 소속사로서 ‘도의’는 지킨 셈이다. 또 ‘깨거나 축소시키는’ 시점이 빠른 것도 아니다. 열성팬들 덕택에 음반이나 음원판매는 최고조지만, 이미 대중적으로는 한계까지 와있다. 삼촌팬들이 받쳐주는 오타쿠 전용그룹 이미지가 뱄다. 이러면 대중이 점점 꺼리게 된다. 일본 소녀 아이들그룹 모닝구 무스메의 쇠락도 유사한 상황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그럼에도 소녀시대는 여전히 아쉽다. 음악적 측면에서다. 한국 대중문화시장은 본래 동네축구 구조다. 공이 날아간 지점으로 너도나도 몰린다. 너도나도 일렉트로 힙합으로 몰려가는 현 시점, 유로 풍의 다양한 지점을 하나씩 밟아주며 음악적 차별성과 일관성을 보여줬던 게 소녀시대다. 완성도도 높았고, 과연 SM엔터테인먼트가 가장 신경 쓰는 그룹다웠다.

이런 그룹이 장수할 수 없는 구조가 반복되면 곤란하다. 어차피 SM엔터테인먼트 음악은 대개 유사한 방향이어서 다른 SM그룹 곡 들어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동일한 그룹이 내놓는 음악의 친밀감과 연속성, 그에 따르는 시너지 효과는 ‘얼굴만 다른 4년짜리 그룹들’의 교체로 채워지기 어렵다.
SM엔터테인먼트 측의 전략 수정이 요구된다. 그것도 본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 아이들그룹에서 그렇다. 4~5년짜리 단발 아이들이 아닌, 7~8년 이상 가는 장기적 아티스트형 아이들 모델을 고민해봐야 한다. 예컨대 YG엔터테인먼트적인 아이들을 고려해 봐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SM엔터테인먼트는 ‘누가 뭐래도 아이들’의 상징이다. 그 헤게모니를 놓으라는 건 아니다. 다만 모두 같은 모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SM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내 아이들 기획사들 중 가장 음악적 관심과 역량이 뛰어남에도 이를 파는 방식이 ‘누가 뭐래도 아이들’로 통일돼 전략 간 충돌이 심하다는 점이다. 음악적 역량이 소모되고, 심지어 오염까지 된다. 수준 높은 댄스음악도 ‘소녀시대가 부르니’ 바로 폄하돼버린다. 일본에서 실력파 아티스트형 아이들로 인정받는 동방신기도 국내로 넘어오면 오타쿠 아이들로 바뀐다. 이 같은 딜레마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아티스트형 아이들 모델을 따로 개발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말처럼 그리 쉽게 진행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라도 안다. SM엔터테인먼트의 레이블 이미지는 이런 전략이 바로 먹혀들어갈 만큼 연하지 않다. 고정관념이 있어 즉각적인 인식전환은 어렵다. 그래도 서서히 시동을 걸어보긴 해야 한다. 해외 메이저 레이블의 인디 레이블 동시가동처럼, 레이블을 따로 하나 만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어찌됐건 소녀시대라는 과도기적 상품이 남긴 안타까움을 해소시켜 줄 방편이 필요하다. 그게 SM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국내 대중음악시장 전체의 지루한 흐름을 쇄신시키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국내 아이들산업을 이끈 선도주자라면 그 정도 역할은 해줄 필요도 있다. 그래야 소녀시대도 그 같은 과정의 초석이라는 의미에서 훗날까지 그 존재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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