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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웅의 세상보기]유엔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공론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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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중순, 베를린은 때 이른 무더위로 허덕였다. 백년 만에 찾아온 불청객이라고 했다. 에곤 바(Egon Bahr) 전 서독 경제협력부장관. 동서독 막후 협상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열기어린 목소리를 높였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남북 정상들이 첫번 만남만으로 한반도의 통일원칙과 방법까지 협의를 했으니까요. 하지만, 동서독 사례로 보면 본격적인 협상이나 관계 증진은 이제 시작이라는 자세가 중요해요. 남북 사이에도 수많은 난관과 고비가 있을 테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의 지적은 옳았다. 그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성사시켜 관계 개선의 청사진을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브란트수상의 진정한 친구였던 그는 동서독 정상회담을 이뤄낸 막후 주역이었다. 그의 원숙한 협상 경험은 끝 모를 만큼 깊이와 통찰력을 느끼게 했다.

사실, 그랬다. 동서독은 처음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동독지역 에어푸르트와 서독 카셀에서 번갈아 열었다. 회담 결과는 기대와 달리 신통치 않았다. 정상회담이 개최된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정도였다.

동서독은 그러면서 아홉 차례의 정상회담을 열었고, 132회에 달하는 실무대화를 이어갔다. 성과는 차근차근 쌓여갔다. 동서독 관계 개선의 기초는 더욱 다져졌다. 우리처럼 화끈하게 최종 해결점까지 단번에 접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결과는 어떠한가. 동서독은 교류협력의 길을 달려서 자유평화통일을 이뤄냈다. 남북한 관계는 아직도 일희일비와 긴장 속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 승자와 패자가 없는 소모적 게임의 연속

이번, 천안함 폭침사건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 결과는 또 다른 교훈으로 삼을만하다. 한·미 양국은 전체적 맥락에서 국제사회가 북한에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에 북·중 양국은 북한의 소행임을 명시한 조항이 없다는데 초점을 맞췄다. 누가 승자이고 패자인가. 분명한 사실은 국제사회가 냉혹한 역학이 작동되는 현실의 장이면서, 때론 정치적 타협이 진실보다 한발 앞서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민족내부문제이며, 동시에 국제문제라는 담론은 상식에 속한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보다 현실 속에서 실감나게 남북관계의 나사들을 조이거나 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벌

써,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이 이번주 중 천안함 관련 논의에 들어간다. 중국과 북한 측은 이미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을 다시 열자는 입장을 취했다. 그 자리에서는 남북 간 긴장이 이렇게 첨예하니까 "(한반도)평화협정을 완성하자"는 식으로 적극 공세가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전형적인 국면 전환 수법이다. 이 모두가 현 남북관계의 비정상과 대화 단절이 계속 되고 있는 탓이다.
 
◆ 품위있는 남북대화 무대를 유엔으로

그래도 한줄기 빛은 보인다.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가면 늘 반전하는 속성을 보여왔다. 북한의 핵개발은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가(’94.6), 남북 정상회담 합의로 극적인 전개를 했었다.

제1차 연평해전(’99.6) 이후에는 실제로 첫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도 했다. 남북관계는 원래 우여곡절의 연속이라는 교훈은 다른 것이 아니다. 남북관계에서 단기적 대응도 필요하나, 중장기적인 평화 관리가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무엇보다 북이 천안함 폭침에 사죄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는 시급한 것이다.

차제에 유엔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을 공론에 올려보면 어떨까 한다. 남북은 그동안 사실관계를 떠나 서로 합의와 규약을 안 지킨다고 비난하면서 품위를 손상해왔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괜찮은 대화 채널을 하나 더 뚫도록 하자. 남북은 글로벌 무대에서 인류보편적인 조명을 받으며, 품격 있는 대화를 나눌 때가 됐다.

남북은 서로 준비기간을 거쳐 오는 9월 이후 국제사회의 성원 아래, 유엔본부에서 양 정상이 만나는 방안을 검토해 볼 만 하다.

사실은, 제 1차 남북 정상회담 때의 전례대로 북의 수뇌부가 서울에 와서 회담을 여는 것이 당연하며 미래지향적이다. 게다가 북측이 국제 사회에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참여해야 할 여건 역시 만만치 않고, 또 남북이 함께 풀어갈 어려운 문제들도 잔뜩 쌓여 있다.

그럼에도 현실은 엄연한 현실, 우리의 넓고 긴 안목과 사려로 남북 관계를 주도해서 관리해야 할 책무가 바짝 다가서 있다. 6.25 전쟁 환갑을 코앞에 둔 지금, 이 땅에 다시는 부모의 아픔, 2세들의 희생이 있어선 안 된다. 동 시대를 함께 사는 모든 이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그것 아니겠는가. 남북의 동행, 도약은 언제나 변함없이 같이 가야할 길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그 시발점일 수 있다. 진짜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아보자.

글ㅣ김경웅 (논설위원·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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