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이, 3개국어에 외교관 아버지를 둔 그녀지만 그녀는 음악의 길을 선택했다. 청춘의 혹독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녀가 청춘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소이는 “작년에 청춘페스티벌에 관한 기사를 읽고 좋은 행사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인터넷을 포함한 미디어에서 많은 정보가 넘쳐나고 'how to'에 관한 이야기는 끝도없이 많지만 가장 기초가 되어야할 열정과 꿈에 대한 심도있는 이야기는 많이 없어서 참 아쉬웠어요. 하우투 보다는 사실 '와이'가 먼저 바로 서야지 지치지 않고 견뎌낼수있는게 꿈을 위한 항해인데 말이에요. 공감해줄수있는 멘토, 힘들지, 다 알아. 토닥여줄수있는 몇걸음 앞서간 동시대 인물의 살아있는 이야기.가 청춘들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런 페스티벌이 고마워요. 사실 저도 힘을 얻기위해 참여하는거에요. 꿈을 꾸는것이 힘들어질때마다 떠올릴 누군가의 토닥임을 얻기위해” 강연을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녀는 대한민국 청춘들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는 무언가에 매달려야 하기 전에 확실한 자아의 확신. 꿈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물론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것이 아니고 분명 멘토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그것에 의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국민 처제로 급부상한 그녀, 형부님 덕분에 재밌는 애칭이 생겼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티티마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현재는 라즈베리필드라는 인디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아이돌의 화려함을 그리워하기보다는 그녀들의 자유스러운 젊음이 그립다고 말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정립되어지지않은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알수없는 혼란속에서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무언가를 알고싶어서 아이돌을 그만두었지요. '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험난한 여행이기도 해요. 가끔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채 주어진 일,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자아 라는 필터를 통과 시키지 않고 흡수했던 그 때로 돌아갔음 좋겠단 생각을 해요. 어떻게 보면 편했으니까요. 꿈이 없으니 현실에 부딫힐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에요. 그치만 그러다가도 화들짝 놀라 지금의 내모습에 감사해요. 결국엔 그때의 나이브함 보다 지금의 치열함이 좋더라구요. 그 치열함속에서 탄생하는 나의 이야기들이 좋구요. 표현해낼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이 좋구요”라고 솔직한 그녀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청춘들과 같은 꿈을 가지고 달려갔지만 실패의 경험도 겪은 소이, 라디오PD 언론고시에 낙방한 그녀..청춘들의 공감대를 이야기하다. “떨어질때마다 속상은 했지만 충격적이진 않았어요. 그러다가 그 시간동안 연기를 하게 되고, 음악을 만들게 되고, 내가 하고싶은것을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시험보는것을 그만두었어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과정의 일부분이었지요.”라고 그녀의 현재를 즐긴다.
3개국어 능통자에 외교관 아버지를 둔 그녀가 당한 심리적인 고통을 들어봤다. “대학교까지자아를 못찾았어요. 한국인도 미국인도 중국인도 아니었으니까요. 외로웠어요. 실제로 왕따라는 것도 많이 당했구요. 지금은 노마드라고 생각해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어디에도 속해있는 사람이요. 국적도 한국이고 가장 사랑하는 나의 모국은 당연히 한국이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심한 괴리감을 느낄때가 있어요. 그럴때마다 무지 외로워지는데 지금은 예전보다는 많이 익숙해졌어요. 음악하는 친구들, 영화하는 친구들 중에서 이런 괴리감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많은 도움이 되어요” 그녀는 음악을 하며 외로움을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