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윤여준칼럼] ‘극치’의 대결 속에 놓치고 있는 것

이번 총선에 나설 후보자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여야간에 ‘극치’의 대결이 벌어졌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민주통합당의 모바일 경선 과정에서 빚어진 부정 사건을 두고 “비리의 극치”라고 비난한데 대해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무식의 극치”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과연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가? 우리가 이 극치의 대결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현대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다. 국민의 주권행사는 주로 대표를 뽑는데 국한되는 간접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와 주권자 간에는 세계관과 이해관계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민 의사의 부단한 수렴 및 참여 등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통해 대의정치를 보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정보통신기술이 혁명적으로 발달한 시대를 맞아,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디지털 소통기술을 활용한 국민들의 정치적 참여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4년 전 목도한 촛불사태란 소통 거부의 정부에 대항하여 바로 이러한 국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적 참여 욕구가 극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고 하겠다. 이렇게 주권자와 대표간의 간극이 커져 근본적으로 대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주민들이 대의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혁명적 상황이 초래될 위험성마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의 민주주의는 실패하였으니 이제는 디지털 기술이 열어준 통로를 활용하여 직접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자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1980년대 미래학자들은 향후 소통기술의 발달로 직접 민주주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하였다. 나아가 21세기가 되면 점차 정당은 소멸할 것이며 정치인이라는 직업도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전히 정당정치와 이를 기반으로 하는 의회정치가 거의 유일한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대의민주주의란 단순히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기 어렵다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채택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동적이고 복잡다단하며 정제되지 않은 국민 의사를 집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여과장치로서의 심의라는 절차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디지털 소통기술을 무조건 도입, 확대하는 것은 올바른 해답으로 보기 어렵다. 소통기술 자체가 성숙한 민주주의를 담보해 주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최근 본 것처럼 상당한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의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되, 이러한 소통기술의 부작용을 보완하여 직접 민주주의적 요구를 수렴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당면 과제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가 ‘산업화에서는 늦었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장서자’는 구호 하에 디지털 시대의 기반 조성에 주력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부합되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다만 디지털 기술의 정치사회적 문제점에는 주목하지 못한 것이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를 자처, 디지털 기술을 통한 참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에 적극 부응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디지털 소통수단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 골몰한 나머지 오히려 정치사회적 갈등을 첨예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데 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초 충격적인 촛불사태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려 할뿐 참여는커녕 소통마저 봉쇄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최근의 ‘나꼼수’와 같이 공론장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거나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소통매체까지 등장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분출하는 국민들의 직접 민주주의적 욕구를 제도적으로 수렴하여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투철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는 아예 그러한 문제의식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신기술발전에 따른 소통과 참여의 확대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가 되어 버렸다. 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간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바뀌고 삶의 양식마저도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미 체험하고 있다. 우리 정당들도 이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같은 디지털 소통수단을 주로 선거 때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정치 시대를 맞아 통신기술의 발달이 정당 정치에 대해 갖는 함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비하는 본질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다음 선거 때는 “혼란의 극치”를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출처 : 경향신문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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