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기자수첩] 중소업체가 10여년 걸쳐 만든 기술 훔쳐간 롯데

박성민 기자

[재경일보 박성민 기자] 롯데피에스넷이 중소 납품업체의 기술을 몰래 빼돌려 영업을 하다 적발됐다. 이에 대표이사 김모씨(45) 등 3명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결국 경찰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 일은 지난 8월 롯데피에스넷이 중소 협력업체 네오아이시피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당시 경찰은 금천구 가산동의 롯데피에스넷 본사를 압수수색 했고 업무용 PC, 외장메모리, 서류 일체를 거둬가 분석 작업을 벌여왔다. 경찰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문제로 대기업 계열사를 압수수색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과정은 이렇다. 8월 당시 네오아이씨피 관계자와 대화를 해본 바 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기술 탈취가 일어난 것을 확인한 것은 올해 초였다. 탈취 배경은 개발자가 잠시 안 보이는 틈을 타 직원 노트북에서 핵심 프로그램 정보를 USB를 이용해 몰래 빼낸 것이다. 당시 이 관계자는 메일과 메신저, 증언 등의 자료를 확보해뒀다고 말했다. 탈취를 확인하게 된 정황은 '개발자 버전'이었다. 일반적으로 ATM기는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마다 개발자 버전을 따로 표시를 해 놓는데 그것이 바뀐 것을 확인하게 된 것.

롯데그룹 자회사인 롯데피에스넷은 롯데그룹의 백화점·대형마트·편의점 매장에 현금을 자동 입·출금할 수 있는 장치인 ATM을 설치·운영하는 회사다. 네오아이씨피는 금융자동화기기를 개발·제조하는 업체. 롯데피에스넷과 네오아이씨피는 지난 2008년 12월 30일부터 네오아이씨피가 개발한 ATM기와 ATM 운용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800억원대의 납품 계약이었다.

롯데피에스넷은 네오아이시피에 시스템 유지·보수 업무를 함께 맡겼는데 ATM기기 시스템 유지·보수에 드는 3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ATM 운용 프로그램, 소스, 기술자료 제공 등을 통째로 넘기라고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네오아이씨피가 이를 거부하자 지난 3월 롯데피에스넷은 롯데에 파견 근무 중이던 네오아이씨피 직원의 노트북에서 관련 기술을 몰래 빼낸 것이다. 직원을 시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네오아이씨피 관계자의 의하면 개발자들은 해당 업체에 상주하며 함께 개발을 하는데 이같은 상황에서 기술을 빼간 것이었다.

이는 네오아이씨피 금융자동화기기의 핵심엔진인 AP 프로그램, 소스를 탈취한 것이다. 기계를 통제하는 운영시스템 일체에 해당한다.

그런데 훔쳐간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가 않았다. 이에 롯데피에스넷은 재차 프로그램 설계도(소스 코드)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거부하자 지난 6월 재입찰에서 네오아이씨를 탈락시켰고, 거래를 끊었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새로운 협력업체 선정 입찰 공고를 내며 압박을 한 것이다.

네오아이씨피가 탈락하게 된 이 과정을 봐야 하는데, 롯데피에스넷은 지난 5월 17일 네오아이씨피를 포함, 4개사(주식회사 네오아이씨피, 롯데기공, LG엔시스, 청호컴넷)에 'CD·ATM 통합 유지보수를 위한 제안요청'을 한다. 그러나 제안요청서엔 기존 계약하던 유지보수계약과는 다르게 여러가지 부당한 기술자료(지적재산권) 요구와 신규로 낙찰되는 업체에 유리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네오아이씨피에 따르면 이는 롯데피에스넷이 기기 제조·생산·개발 노하우가 담겨있는 H/W, S/W, 모듈 DLL 등 핵심기술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는 사전에 전혀 협의가 돼 있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만약 네오아이씨피가 롯데피에스넷이 제안한 통합유지보수 제안에 참가하고 경쟁사이자 입찰업체인 LG엔시스 및 청호컴넷이 유지보수업체로 선정되면 모든 핵심기술이 롯데피에스넷 뿐 아니라 타사에도 공개되는 결과를 만드는 일이었다. 16년간의 노하우가 담겨있는 지적재산권을 공개할 수 없는 일이었고 롯데피에스넷의 이런 요청은 기술자료 제공 요구의 방법 내지 절차가 사회통념상 정상적인 거래 관행에 부합되지 않는 일이었다.

당시 롯데피에스넷 측은 "기술유출은 절대 없었다"며 "네오아이씨피와 계약이 만료돼 기존 수의계약을 다른 경쟁업체가 참여할 수 있는 공개경쟁 입찰로 바꾸자 입찰을 포기한 네오아이씨피가 불만을 품고 기술 유출을 주장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네오아이씨피 관계자는 당시 "롯데피에스넷이 기술탈취를 합리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이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오아이씨피가 입찰에 참가하고자 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해당 자료를 다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네오아이씨피는 입찰 참가를 할 수 없었던 것.

또 지난 3일 롯데피에스넷은 다른 식의 말을 했다. 롯데피에스넷은 네오아이씨피와 공동개발계약서를 작성했고 때문에 당연히 자사의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계속 이관요청을 해왔다고 답했다. 어떻게 롯데피에스넷의 것인가. 기존 네오아이씨피와의 유지보수계약에 따르면 기술자료 요구는 엄연한 부당한 요구 아닌가.
 
제안요청을 통한 기술자료 강요와 맞물려 롯데피에스넷은 일방적으로 계약잔량 납품 중단, 유지ㆍ보수 계약을 종료했다. "하자가 심각하여 더 이상 구매를 못하겠다"는 주장이었다. 롯데피에스넷은 ATM기기 안에 설치된 카메라 오작동 등 각종 기계결함을 주장하며 계약공급잔량인 약 1천대의 ATM공급을 일방적으로 중단했다. 경찰은 네오아이씨피가 이로인해 74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황당한 건 정길환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경위에 따르면 가해기업인 롯데피에스넷은 수사를 받는 도중에도 총 10여차례에 걸쳐서 피해업체인 네오아이씨피로 부터 빼낸 자료를 이용해 자신들의 영업에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기술유출을 경험했다는 중소기업은 12.5%, 건당 피해액은 15억8천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산업기밀 유출 건수 47건 가운데 80%가 중소기업의 기술이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번 일은 매출 분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계약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재벌 기업 롯데가 중소기업 하나를 없애려고 한 일에 다름 아니다. 돈과 시간, 노력을 기울여 어렵게 개발한 핵심기술을 대기업 계열사가 몰래 빼돌렸고, 이에 네오아이씨피는 10여 년에 걸쳐서 100억 이상 투자해서 만든 제품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과 같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가로채거나, 인력을 빼오는 일이 허다하다. 이래서 대한민국에서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대기업과 협력업체와의 '상생'은 먼나라 얘기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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