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미국 빌보드는 지난해 '2013 최고의 K팝 송' 1위에 엑소의 히트곡 '으르렁'을 선정했다. '으르렁'은 신인이던 엑소 열풍의 기폭제였으며 앨범 판매량 100만 장 돌파를 이끈 노래다.
트렌드에 민감한 가요계는 이 곡을 만든 작곡가를 발 빠르게 수소문했다. 바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프로듀서 신혁(29)이 이끄는 작곡팀이었다.
비로소 화제 집중이 됐지만 신혁은 이미 빌보드 메인 차트에 오른 이력이 있다. 캐나다 출신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2009년 발표해 빌보드 싱글 차트 '핫 100' 16위에 오른 싱글 '원 레스 론리 걸'(One less lonely girl)을 공동 작곡했다. 한국인 작곡가가 만든 팝스타의 노래가 빌보드 메인 차트에 진입한 건 처음이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신혁을 최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현재 그는 2012년 설립한 레이블 '줌바스뮤직그룹'의 대표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있는 줌바스뮤직의 미국 지사에서, 기자는 한국 본사에서 대형 모니터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미국에 온 지 10년 만에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한다는 그는 2004년 자작곡을 담은 음반 '소어'(Soar)로 데뷔한 가수 출신이다. 타이틀곡 '로보트'로 활동했지만 딱 한 장의 음반을 내고서 2005년 1월 미국 버클리음대에 입학하며 무대를 떠났다. 기자와는 당시 인터뷰 이후 10년 만이다.
그는 "백스트리트보이즈의 프로듀서 맥스 마틴을 존경했다"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인 최초로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게 꿈이었다.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난 것도 그 꿈을 위해서였다. 다른 목표로 질주했으니 학교에선 최악의 학생이었다"고 웃었다.
2005년 겨울 그는 버클리음대 인근 악기 상점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하는 션 해밀턴이란 친구를 만났다. 키보드를 설치해주러 신혁의 집에 온 션은 신혁의 음악을 듣고는 자신도 곡을 쓴다며 그날로 함께 음악 작업을 했다.
"미국 프로듀싱 팀 넵튠스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중 한 명이 필리핀계 동양인이잖아요. 인종차별이 있는 미국에서 동양인 프로듀서가 성공했다는 점이 큰 용기를 줬죠. 저와 션은 넵튠스를 롤 모델로 그런 팀이 되보자며 손을 잡았어요. 션이 일을 끝내면 밤에 우리 집에 와서 다음날 새벽까지 함께 곡을 만들었죠."
두 사람은 2006년 프로듀싱 팀 '에이-렉스'(A-REX)를 만들었다. 함께 만든 곡에 '에이-렉스 1', '에이-렉스 2'로 이름붙이다 보니 어느덧 수백 곡이 쌓였다. 그러나 곡을 사줄 인맥이 없었다. 데모 CD를 들고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뉴욕의 기획사를 무작정 찾아다녔다.
그는 "처음엔 이메일을 보냈는데 열어보지도 않았다"며 "결국 매주 금요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보스턴의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싼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건너가 기획사를 찾아다녔다. 물론 피드백은 한 곡도 없었다. 대학 졸업 전까지 부모님에게 믿음을 주려면 곡을 팔아서 빌보드에 가야 해 막막했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마이스페이스에 '에이-렉스 프로덕션' 페이지를 만들어 음악을 올렸다. 이들의 음악은 세계적인 레이블 데프잼의 A&R 담당자 눈에 띄었고 저스틴 비버에게 '원 레스 론리 걸'을 주게 됐다. 이 곡이 빌보드에 올랐을 때는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성공을 맛본 신혁과 션은 보스턴에서 애틀랜타로 옮겨 작업했다. 에픽레코드의 수장인 L.A 리드와 전속 프로듀서로 사인한 뒤 EMI뮤직 퍼블리싱과도 계약했다.
이후 둘은 아티스트 제작에도 손을 댔다.
"미국에선 한 곡만 잘돼도 저작권 규모가 크지만, 곡을 지속적으로 파는 건 힘들어요. 그래서 미국에서 입지를 굳히려면 우리 사운드를 선보일 아티스트가 필요했죠. 매트 머스토, 에스티란 친구들의 앨범을 작업했는데 각기 다른 이유로 무산됐어요. 저작권으로 번 돈을 이들 프로젝트에 쏟았기에 이땐 좀 힘든 시기였죠."
아티스트 발굴에 상처를 입은 신혁은 이 시기 션과 7년간의 파트너 관계를 마무리했다. 이즈음 K팝 시장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2011년 틴탑의 '수파 러브'(Supa Love)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SM엔터테인먼트 가수들과 작업하게 됐다.

샤이니의 '드림 걸'(Dream Girl), 엑소의 '으르렁'이 크게 히트했고 소녀시대, 에프엑스 등의 앨범에도 참여했다. 최근 신인 그룹 빅스를 주목하게 만든 히트곡 '저주인형'도 그의 작품. 음반기획사들의 '러브 콜'이 쏟아지는 이유다.
"제가 한국인이니 K팝 작업이 재미있고 열정이 커요. K팝은 음악을 뼈대로 춤, 뮤직비디오, 스타일이 패키지를 이루는 강점이 있기에 음악 자체가 무척 중요하죠. 그래서 요즘 곡 제안이 많이 들어와도 단순히 돈 벌려는 게 아니니 다작은 안 합니다. 제 음악의 신뢰를 높이고 한국 음악 시장이 윤택해지려면 퀄리티가 높아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거든요."
그는 이어 "각기 재능있는 작곡가들이 함께 만들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콘텐츠가 나온다"며 "트랙, 멜로디, K팝 요소를 넣는 공동 작업이 무척 중요하다. 해외의 다양한 소스를 버무려 세련된 사운드를 만들고 K팝 감성과 접목하는 게 우리 장점이다. 한층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혁은 줌바스뮤직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음악 기업으로 일굴 계획이다. 현재 소속 프로듀서는 총 13명으로 음악을 만드는 프로덕션 겸 가수를 육성하는 음반 제작을 동시에 펼친다.
내년 데뷔를 위해 준비 중인 가수는 두 명이다. 아이돌 그룹은 아니다. "지금으로선 아이돌 그룹은 리스크가 크고 할 수 있는 장르와 콘셉트의 영역이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생각에서다.
"팝 성향이 강한 레이블 색깔에 맞게 보컬에 팝적인 요소가 있는 친구 둘을 발굴했어요. 지금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고 있어요. 지드래곤처럼 랩, 작곡에 능하고 패션 스타일링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전방위 역량의 친구들이 좋아요."
그는 지금 새로운 목표를 위해 뛰고 있다. K팝의 달라진 위상을 피부로 느끼는 만큼 한국과 미국을 잇는 글로벌 시스템을 통해 국적을 넘는 '웰 메이드' 콘텐츠를 배출하는 것이다. K팝이 비슷한 장르로 쏠리는 약점이 있으니 '한국의 아델·어셔'가 나오는데도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원동력은 실패를 하더라도 포기를 안 하는 것. 중학교 때 아버지와 한 약속을 지켜 몇백만 원 짜리 신시사이저를 손에 넣은 것도, 17살 때 토플 시험을 준비해 버클리음대로 유학을 떠난 것도, 빌보드에 오른 작곡가가 된 것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게 이토록 열의를 쏟는 음악이란.
"음악이 없으면 뭘 할지 모르겠어요. 식상한 말이어도 제 인생의 전부이고 존재 이유인 것 같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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