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파편화된 자국 반도체 산업을 소수의 ‘국가 챔피언’ 기업으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복잡한 이해관계와 구조적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의 대형 경쟁사에 맞서기 위한 전략이자,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 강화에 대응해 자급형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장기 정책의 일환이다.
6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용한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는 올해 초 국내 반도체 장비 업체들을 모아 초대형 합병(메가머지) 방안을 논의했지만, 지분 구조·기업 가치 산정 문제로 관련 논의가 지지부진해진 상태다.
한 협상 관계자는 “이해관계가 지나치게 분산돼 있었다”라며 “매도자는 손해를 보고 싶어하지 않고, 매수자는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당초 정부가 그린 대규모 통합 청사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전했다.
▲ 거래 증가에도 구조적 통합 진전은 더뎌
중국 정부의 통합 정책은 난항을 겪고 있지만, 올해 들어 인수·합병(M&A) 거래 건수는 증가했다.
금융 정보 제공업체 윈드(Wind)에 따르면, 올해 현재까지 발표된 반도체 인수합병은 총 26건에 달한다.
가장 주목할 만한 거래는 서버 및 데이터 센터용 CPU 설계 기업 하이곤(Hygon)과 슈퍼컴퓨터 제조사 수곤(Sugon)의 지난 5월 합병 발표였다.
만약 이대로 진행된다면, 올해 인수합병 건수는 팬데믹 이후 최고치였던 지난해의 45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의 통합은 중국의 장비 자급화 전략의 핵심임에도 속도가 더디다.
현재 중국 내 반도체 공장(팹)은 여러 업체의 장비를 조합해 사용해야 하고, 기술 통합성이 낮아 생산 효율과 유지보수 부담이 크다.
제프리스(Jefferies) 소속 애널리스트 에디슨 리는 “팹은 하나의 벤더에서 다양한 장비를 공급받기를 원한다”라며 “단일 제품만 보유한 회사는 성공하기 어렵다”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통합을 통해 전략적 기업에 자금을 집중하고,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램리서치(Lam Research) 등 글로벌 장비 업체 의존도를 낮추려 하고 있다.
번스타인(Bernstein)의 반도체 애널리스트 린칭위안은 "분산된 투자는 부문을 수익성 있게 만들 만큼의 규모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생겼다"라며 "자원을 집중시켜 국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수의 국가대표급 기업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구조적 문제: 기술력 부족·평가 차이·지자체 이해관계
업계에서는 통합만으로 중국 기술 부문에서 의미 있는 기술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상하이의 한 반도체 투자자는 "매물로 나온 기업 중 상당수는 방어 가능한 기술 해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전략적인 것을 가져오는 파트너십이 아니라면 성공적인 인수가 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린칭위안 애널리스트는 "통합 위험이 높다"라며 "종종 자산을 인수하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는 기업들은 왜 그 기업의 실적이 저조한지 잘 알기 때문에 인수를 원하지 않고, 기업 가치 평가가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평가(valuation) 격차와 지자체 이해관계가 걸림돌이다.
중국의 지방정부는 지난 10년간 성급한 파운드리(Foundry) 투자 붐으로 중복 설비·과잉 생산·저가 경쟁을 초래했다.
하지만 지분 대부분이 지방정부 소유라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고 매각하기 어렵다.
한 투자자는 “지방정부는 국가 자산을 헐값에 팔았다며 비판받을 것을 우려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부동산·섬유기계 업체 등 비반도체 기업들의 M&A 참여도 이어지고 있지만, 성사율은 낮다.
▲M&A 실패 사례 증가와 파운드리 통합 난항
정부 주도 통합 움직임은 반도체 부문 외부 기업들의 관심도 끌어모았다.
부동산 개발업체부터 살균제, 편직기계 제조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장 기업들이 반도체 자산 인수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 중 상당수는 최종적으로 무산되고 있다.
윈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파이낸셜 타임즈(FT) 분석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이전에 발표됐던 8건의 거래가 완료되지 못했다.
중국 EDA(전자 설계 자동화) 선두 기업인 엠피리언 테크놀로지는 지난 3월 소규모 경쟁사인 엑스피딕(Xpeedic) 인수를 발표하며 툴킷 확장을 꾀했지만, 지난달 조건 합의 실패로 거래가 무산됐다.
가죽 신발 제조업체인 저장 아오캉(Zhejiang Aokang)과 편직기계 전문업체인 닝보 시싱(Ningbo Cixing)도 기업 가치 평가 이견을 이유로 최근 제안했던 반도체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매수자와 국영 매각자 간의 기업 가치 평가 불일치가 지속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투자자는 "많은 투자자들이 재무 성과가 악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부 가치 이하로 자산을 처분하는 것을 꺼린다"라고 말했다.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통합에서는 아직 큰 진전이 없다.
지난 10년간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는 파운드리 프로젝트가 급증하면서 병렬적으로 생산 능력이 구축되었고, 이는 성숙 공정 칩의 공급 과잉과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이어졌다.
중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첨단 파운드리 시장을 통합하여 분산된 프로젝트에 인재와 최첨단 장비를 흩어놓는 대신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첨단 칩을 생산하기 위한 7나노미터(nm) 라인에 대한 투자가 선전과 상하이에서 이루어지는 등 새로운 투자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노력의 중복과 인재 분산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전문가들은 “통합의 필요성은 분명하지만, 실질적인 기술 경쟁력 확보와 정치적 이해관계 조정 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라고 평가한다.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 통합 정책은 전략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이해관계와 밸류에이션 문제, 정치적 제약 등으로 인해 당초 목표했던 대규모 거대 기업 탄생은 아직 멀어 보이는 상황이다.
다만 일부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서 점진적 변화는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진단] 미 증시, 지정학 완화·빅테크 반등에 상승](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982892/image.jpg?w=288&h=168&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