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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축구의 '별' 고종수가 영욕의 11년 세월을 뒤로하고 축구화를 벗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종수(31)는 6일 숱한 기억을 뒤에 묻고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해 8월 부상 재발시 구단과의 갈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은 고종수는, 시즌 종료 직후 구단의 재계약 우선 대상자 명단에서 제외되며 다시 충격을 받으며 은퇴를 결심했다.
1996년 수원을 통해 혜성처럼 등장한 고종수는 천부적인 재능을 뽐내며 K리그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창조적플래이, 전매특허 왼발프리킥으로 한국축구팬의 마음을 뺏어버린 고종수는, 데뷔 3년만인 1998년 팀을 이끌고 K리그 정상에 우뚝섰다.
이듬해인 1999년 수원의 중심멤버로 다시 한번 팀을 최고의 자리로 이끈 고종수는 시즌 MVP에 오르며 최고의 시절을 보냈다.
태극마크는 1997년 호주 4개국 대회에서 처음 달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대표팀에서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게임메이커'로 한국팀을 지휘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대표로도 활약한 고종수는 A매치 38경기에 출전, 6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기관리에 실패했다.
잇달아 무단이탈 및 음주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고, 대표팀에서도 탈락했다. 한국에서 개최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대표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며, 최고의 시절을 누구보다 쓸쓸히 보냈다.
지친 마음으로 2003년을 맞은 고종수는 해외이적을 요구,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했으나 부상재발과 적응실패로 한 시즌만에 수원에 돌아왔다.
그러나, 수원에서도 고질적인 부상은 고종수를 괴롭혔고, 팀훈련 이탈 등 다시 자기관리에 다시 실패하며 임의탈퇴 선수로 공시됐다.
2005년에는 전남 드래곤스서 허정무감독의 지도아래 새둥지를 튼 고종수는,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7년 수원시절 스승 김호 감독의 대전에서 재기를 꿈꿨으나 부상과 구단과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며 돌연 은퇴를 선언, 현역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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