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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후정치를 입증하는 정조의 편지가 공개, 정적으로 알려진 심환지가 심복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과 한국고전번역원은 9일 오전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의 종합검토'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조가 재위 말년(1796-1800)에 예조판서와 우의정 등을 역임한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沈煥之.1730-1802)에게 보낸 어찰첩(御札帖) 299통이 공개됐다.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沈煥之)는 정조와 정치적인 대립노선을 걸은 인물로, 정조가 사망할 당시 옆에서 약을 들도록 했기에 그가 정조를 독살했다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비밀 편지는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15일까지 정조가 친필로 써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심환지가 국왕의 정적이 아니었음을 물론 그가 충실한 심복이었음을 드러냈다.
이 편지들에 의하면 정조는 심환지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당대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 노론 벽파계 인물들을 통제하려 했고 때로는 심환지와 짜고 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심환지를 예조 판서와 우의정에 임명한 과정이 이에 해당된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1798년(정조 22) 7월 14일에 정조는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하고, 8월 28일에는 우의정에 승진 발령했다.
이번 어찰을 보면 정조는 '내가 언제 너를 예조판서(또는 우의정)에 임명할테니 너는 이렇게 준비하라'는 지침을 심환지에게 사전에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조는 이 편지에서 말년에 질병이 심각했음을 여러 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성균관대 한문학과 안대회 교수는 연합뉴스를 통해 "이 편지들은 정조가 지속적으로 없애라고 명령했음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것"이라며 "국왕과 대신 사이에 국정현안을 놓고 갈등하고 조정하고 첩보를 수집하며 여론 동향을 캐는 다양하고 은밀한 통치행위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밝혔다.
이 어찰첩을 통해 정조시대 정국 동향은 물론이고, 정조의 성격이나 정국 구상과 그 추진 방식 등이 상당 부분 베일을 벗게 됐다는 평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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