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연재]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40>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식물원

서범석 기자

부에노스아이레스 식물원과 역사적인 사무실 건물.
부에노스아이레스 식물원과 역사적인 사무실 건물.

 

필자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1993년부터 여태까지 네번 방문하였다. 처음 세차례의 방문은 회사의 빠듯한 출장업무였으므로, 어릴 때부터 보고 싶었던 라플라타 강(La Plata; ‘銀’)을 볼 시간도 없었고, 도시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식물원을 찾아갈 시간도 없었다. 필자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앞을 흐르고 있는 라플라타 강과 식물원을 드디어 방문하게 된 것은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고 몸과 마음이 자유스러워 졌을 때였다. 회사에서 30년 이상을 근무한 뒤, 이제 소임을 다했으니 후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그 동안 가고 싶었던 곳을 다 다녀야겠다고 결심하고서, 오늘내일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배낭을 등에 메고서 혼자 여행을 떠나 다시 찾은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탱고의 본고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였다.


시내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보면서 식물원과 라플라타강 어느 곳을 먼저 갈까 생각하다가 우선 식물원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식물원은 도시의 서북쪽에 있는 이탈리아 광장(Plaza Italia)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다.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올라오니 바로 앞에 식물원 정문이 보인다. 이 식물원은 11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1898년 9월 7일 오늘날의 위치에서 식물원이 개원되었다.


정문을 들어가면 왼쪽에 동상(흉상)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흉상의 주인공은 식물원 설립에 심혈을 기울인 테이스(Carlos Thays)박사이다. 그 옆에는 박사가 당시에 심은, 높이 15m의 Floss Silk Tree(Bombacaceae Ceiba chodatii) 가 서있다. 원래 이 나무는 열대지역에서는 수십m 높이로 자라는 나무인데, 온대지역에서 생육하는 이유 때문인지, 수령(樹齡)에 비하면 수고가 그다지 높지 않다.


식물원 가운데에는 고색창연한 2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이 건물은 1894년부터 1986년까지 90년이 넘도록 ‘국가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었으나 1987년부터 식물원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이 상당히 크므로(식물원에 그렇게 큰 사무실 공간이 불필요하므로) 건물 안의 넓은 공간은 특별 전시회를 개최하는데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필자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역사에 대한 전시회를 하느라고 건물 안에는 도시의 옛날 사진들이 가득 전시되고 있었다.


정문에서 사무실로 향하다 보면 사무실 오른편에 큰 늑대상이 보인다.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늑대의 젖을 빨고 있는 두명의 어린아이도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로마 정원’ 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이 늑대상은 1910년 5월25일, 이태리의 움베르토 1세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 기증한 것으로서, 어린아이들은 로마를 세웠다는(전설에 나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이다. 로마 정원 근처에 보이는 수목은 주로 남부 유럽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식물원에는 세계 여러 곳에서 가져와서 식재한 많은 수목과 화초가 있으나, 역시 대부분은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을 중심으로한 남아메리카 원산의 식물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동북부에서 생육하며 현지에서 Anchico Colorado라고 부르는 콩과(Leguminosae Parapiptadenia rigida)의 수목도 보인다. 잎이 작은 Albizia (같은 콩과의 Albizia 속)의 잎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잎을 갖고 있다. 남태평양 노폭섬이 원산인 Norfolk Pine(이름만 소나무이지 사실은 소나무가 아님; Araucariaceae Araucaria heterophylla)도 사무실 건물 뒤에 높이 솟아 있는데 현지에서는 이를 Araucaria Excelsa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각종 선인장이 식물원 곳곳에서 보이고(식물원에는 대규모 온실도 있다), 아시아 수종도 한곳에 모아서 식재해 놓았다. 혹시 우리나라 원산의 수목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아시아 수종은 모두 중국과 일본 것만이 식재되어 있다. 중국산 뽕나무과의 수종으로서 현지에서Morera de Papel이라고 부르는 수목(Moraceae Broussonetia papyrifera)이 길가에 나와 있다. 브라질 남부와 아르헨티나 북부의 미시오네스(Misiones)주에서 생육하며 남미를 대표하는 나무 가운데 하나로서 현지에서 Pino Brasil(브라질 소나무) 또는 Pino Parana(파라나 소나무)라고 부르는 남양 삼나무과 나무(Araucariaceae Araucaria angustifolia)도 그 큰 몸집을 과시하며 서 있다.


대도시의 중심부에 있는 이 식물원은 이곳을 찾는 시민들로 분주하다. 벤치에 앉아서 좀 쉬었다 가려고 하였으나 라틴계의 피가 흐르는 이곳의 남녀 쌍들이 먼저 차지하고 앉아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으므로 적당한 대리석 경계석을 찾아 앉아서 식물원의 정경을 조용히 감상하였다. 문득 시내에서 본 탱고 공연장 광고 포스터가 생각나면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식물원의 면적은 8ha(약 26,000평)로서 오늘날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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