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윤여준 칼럼] 민주주의는 말로 하지만, 말이 훼손할 수도

민주주의란 권력의 확립과 정당화를 폭력이 아닌 말을 통해 하는 것

지난 총선에서처럼 말의 위력과 폐해가 단적으로 드러난 적도 흔치 않을 것이다. 팟캐스트 <나꼼수>의 멤버인 김용민 민주통합당 후보의 과거 막말파동이 판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말로 인해 역사의 향방이 바뀐 경우는 동서고금을 통해 적지 않지만, 우리 정치사에서는 4·19 당시 민심에 불을 지른 “총은 쏘라고 준 것”이라는 이기붕의 망언 이래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정치란 단순한 폭력에 의한 일시적 지배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명분으로서 특히 말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왕과 조정에서는 용어 사용에 극도의 신중을 기했고, 군주는 특정 용어를 독점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수사학과 논리학을 중시하는가 하면, 동양에서는 왕의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은 물론 글자의 사용 자체를 금지하기도 했다. 방법은 반대지만 언어를 중시, 이를 관리했다는 점에서는 같았던 것이다.

 민주주의란 권력의 확립과 정당화를 폭력이 아닌 말을 통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의회(parliament)라는 단어 자체가 말하다(parler)를 어원으로 하고 있듯이, 서로에 대한 잠재적 폭력, 다시 말해 내전과 같은 복수혈전을 방지하기 위해 권력투쟁을 말로 하도록 고안된 제도인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모체라고 할 공론장(public sphere) 자체가 카페, 신문 등 문예서클에서 출발하였다는 해석도 있다.

요즘 논의되는 ‘의사소통 민주주의’도 바로 언어를 통해 권력이 구성된다는 관점을 강조한 것이다. 절박한 사정에 처한 사람들이 요구를 제기하면 현자들이 경쟁적으로 이를 발전시켜 의제화하고, 이렇게 제시된 의견과 주장에 대해 운명 공동체의 국민 대중이 그 우열과 가부를 직접 판단, 소정의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응책을 집합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적 발언, 청취, 판단에 따르는 자원과 기회를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문제는 언어란 복합적 기능과 의미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은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가 말하는 바와 같이 인간 정신을 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인식능력의 한계, 모호하고 혼돈스러우며 가변적인 감정과 의지로 인해 언어는 사실관계나 말하는 사람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결함도 안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말의 사용에 특별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언어 사용에서는 사실성이 최대한 확보돼야 한다. 특히 선거 국면에서는 사실을 날조, 과장, 훼손하는 흑색선전과 루머가 민주정치에 치명상을 줄 수 있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는 ‘북풍’, 그리고 ‘양심선언’과 ‘의인’까지 날조하는 행위는 과거 우리 모두 똑똑히 목도한 바 있다. SNS를 통해 투표 당일 미확인 혹은 거짓 정보를 확산시키는 최근의 사례도 주목을 요하는 현상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언어를 이성적이고 품위있게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절박한 요구를 제기하거나 이에 대한 공감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국민적 판단과정에서는 격정적인 언사가 동원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를 정치 의제화하는 과정에서는 냉철한 이성과 종합적인 판단력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원색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분노와 보복의 언어가 아니라 최대한 차분하고 품위있는 이성적 언어가 요청된다는 점이다.

<나꼼수>가 일부 용인되면서도 지난 총선 때 김용민의 막말파동이 논란을 빚은 소이도 여기에 있다. 우리 정치의 병리현상을 고발해 국민적 불만과 스트레스를 푸는 한편 현실정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풍자나 격정적인 언사가 동원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상찬되고 규범화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특히 시중의 여론을 공론으로 바꾸는 즉 정치 의제화의 핵심 담당자라 할 수 있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엄격한 기준과 높은 덕목이 요청되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말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올바르고 품위있는 언어 사용의 중요성에 관해서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 모두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윤여준 본지회장 경향신문 5월 1일자 컬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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