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기자수첩] 병행수입제도의 득과 실

신형석 기자
[재경일보 신형석 기자]각 가정에서 인기가 높은 유럽산 프라이팬의 판매 가격이 수입원가의 2.9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EU FTA 발효 이후에도 일부 제품의 국내 백화점 판매가격이 외국 백화점보다 57.4%나 높았다. 이는 판매관리비, 인건비, 매장비 등 제반 비용을 고려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사단법인 대한주부클럽연합회는 가격 인하를 위해서 수입유통업체의 합리적인 가격 책정, 국내 백화점 등 유통업체의 직수입 확대, 국산의 품질 향상, 정부의 병행수입 활성화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런데 여기서 병행수입제도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병행수입제도란 같은 상표의 상품을 여러 수입업자가 수입해 판매할 수 있는 제도로,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부터 수입제품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허용됐다.

예전부터 논의가 있었으나 수입품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1995년 리바이스 청바지의 병행수입 허용 판결을 계기로 허용된 이 제도는 값비싼 외국제품이 독점으로 인하여 과도한 가격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고, 그렇기에 괜찮은 물가 안정 방안으로 여겨지고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물가 잡기에 골몰하는 정부,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픈 유통업체, 싸게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일석삼조’ 정책인 셈이다.

실례로 세계에서 1분에 3개 꼴로 판매되며, 미용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화장품인 '에스티로더 갈색병 에센스' 한 병(50㎖)의 국내 시판 가격은 15만2,000원이다. 하지만 이 제품이 NC백화점 강서점의 '럭셔리 갤러리'에서는 13만2,000원에 팔린다. 국내 독점판매권을 가지고 있는 공식 수입업체가 아닌, 현지 수출도매상을 통해 수입하는 '병행수입' 제품이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국내의 병행수입 시장은 국내외 가격차가 큰 의류·잡화, 화장품 등 해외 유명브랜드 제품을 중심으로 총 1조원 정도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해외 인터넷몰을 통해 구입하는 '직구'를 포함하면 총 1조5,000억원 정도다. 해외 직매입 능력을 키운 대형마트와 온라인몰도 병행수입에 가세했다.

그 동안 청바지, 향수, 가방, 티셔츠 등을 병행수입해 판매한 적 있는 이마트는 지난 5일부터 병행수입을 통해 가격을 낮춘 리바이스 청바지 3만장을 준비해 여성용 5만9,900원, 남성용 6만9,9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제품의 백화점 판매가는 16만8,000원으로, 이마트는 병행수입을 통해 똑 같은 제품을 60%나 싸게 파는 셈이다.

그러나 병행수입제도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병행수입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은 크게 애프터서비스가 안 되어서, 위조 상품일까 의심이 되어서, 그리고 품질이 낮아 보여서 등등이다.

그 중 꾸준히 제기됐던 문제점은 애프터서비스(AS)다. 정품처럼 반품이나 교환이 가능한 곳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온라인 수선 등은 실비를 받는 곳이 대부분이다. 골프용품은 병행수입 상품이 범람하는데 정품보다 AS 기간이 짧거나 유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캘러웨이 정품을 수입하는 한국캘러웨이골프는 병행수입품 AS를 해주지만 정품 수리비와 가격 차이가 난다. 다른 골프 브랜드는 AS를 해주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또한 위조 상품의 의심 여부도 문제이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소셜커머스는 ‘짝퉁(위조상품)’에 취약하다. 가짜 상품을 버젓이 판매해 소비자 피해를 일으키는 일이 잦다. 지난해 소셜커머스 위메이크프라이스(위메프)는 이랜드가 수입하는 신발 브랜드 뉴발란스와 로레알그룹의 약국화장품 브랜드 키엘 짝퉁 제품을 정가보다 30~50%가량 저렴하게 팔아 물의를 일으켰다. 위메프는 뒤늦게 환불 처리를 하고 사과 공지문을 올렸다.

문제는 또 있다. 수입제품 가격인하와 중소상공인들의 경기부양을 위해 허용된 병행수입제도가 대기업의 손쉬운 돈벌이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마트, 이랜드 NC백화점, 금강제화 등 거대 유통사들이 국내 브랜드 발굴보다는 유명 수입제품 유통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중소업체에 양보해야 할 부분까지 대기업이 손을 대면서 자체 상품 개발보다는 유명 수입 브랜드의 브랜드력이나 제품력에 무임승차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례로, 금강제화는 명동, 강남, 부산 매장 등에서 페라가모 구두를 판매하고 있다. 디자인도 30여종 정도로 일반 페라가모 매장과 큰 차이가 없다. 토즈 신발도 마찬가지로 금강제화에서 30여종의 디자인을 구비해 판매 중이다. 상품권 20% 할인구매 후 행사 기간에 사면 일반 매장보다 40% 다운된 가격에 살 수 있어 판매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이마트도 국내서 뉴발란스의 인기가 높아지자 가격을 30% 다운시켜 판매를 시작했다. 지난달 24일부터 전 매장에서 뉴발란스 574시리즈 운동화를 백화점 가격보다 30% 싼 6만9000원에 내놨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비자들의 이권 향상과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대형업체들이 국내 브랜드 발굴이나 자체 브랜드 개발보다는 수입 브랜드 제품 판매에 열을 올리면서, 중소업체들이 참여하여 경제 전반과 소비자 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빛이 바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러한 현상이 문제일까. 독점계약을 통해 높은 가격으로 유명 브랜드를 국내 유통시키는 대기업이 다른 쪽으로는 경쟁기업이 취급하는 브랜드를 병행수입해서 판매하는 것은 대기업의 이해득실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제도가 운영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대기업들의 이권다툼으로만 제도가 변질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대기업이 온전히 병행수입의 주도권을 틀어쥐게 되면 소비자들이 지금처럼 가격경쟁을 거쳐 저렴하게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기보다는 또 다시 독과점에 의한 폐해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거대 유통사를 보유한 대기업의 전횡에 중소기업의 씨가 말라가는 현상이 반복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어느 제도도 음과 양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물가 안정과 소비자 만족을 의도하여 시행된 병행수입제도가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닌 기업의 영리를 위해서 오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 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건실한 병행수입제도의 정착을 위해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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