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연재기고]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51>

영국 큐 식물원

서범석 기자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51>

 

큐 식물원 한 가운데 서있는 중국식 10층탑
큐 식물원 한 가운데 서있는 중국식 10층탑

 

 

영국은 높은 산이 없이 평탄한 지형을 갖고 있으므로 기본적으로 큰 삼림이 없다.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소설, ‘로빈훗’에 나오는 셜우드(Sherwood) 숲도 사실은 조그만 규모이다. 그러나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식물원 가운데 한 곳을 갖고 있다. 런던 서남부에 자리 잡고 있는 큐 가든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s, Kew)은 면적이 121ha(40만평)에 달하며 전세계에서 온 약 3만종(나무 14000종 포함)의 식물이 식물원의 쾌적한 환경 안에서 숨 쉬며 자라고 있다. 또한 이 식물원 안에 있는 식물 표본실에는 전세계에서 채집된 700만종의 식물 표본이 보관되어 있다. 1759년, 조지 3세 국왕의 모친인 아구스타(Augusta) 공주는 왕실 정원사들을 데리고 템즈강 동안(東岸)에 있는 척박한 토질의 땅에 왕실 정원을 만들었다. 이것이 후일 세계 최고의 식물원의 시작이었다.


1762년, 아구스타 공주는 정원을 운치 있게 하기 위해 정원 한 편에 동양식(중국식) 파고다도 세웠다. 1840년, 이 정원은 정식으로 국립 식물원이 되었고, 영국 왕실은 이 식물원을 1841년에 국가에 기증하였다. 그 뒤, 후커(William. J.Hooker)경(卿)이 제대로 된 식물원을 계획하여 이 식물원의 틀을 만들어(현재, 런던에 있는 린네 학회의 회의실 앞 벽에는 린네의 초상화가 붙어있고 그 오른쪽에는 후커경의 초상화가 걸려있음) 식물원의 면적은 30ha로 늘어나고, 그 뒤 다시 109ha로 확장되었다가 결국 121ha의 넓이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세기에 들어서 본격적으로 전세계의 각종 식물을 수집하여 이곳에 옮겨 왔는데, 그때는 트럭이 없었어서 선박 편에 템즈 강변에 도착한 수목은 말2필이 끄는 마차에 실려 식물원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친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 식물원은 단순히 식물종자만 전시한 곳이 아니라 이곳에 심겨진 식물종자를 실험, 연구하여 영국의 식량증산과 산업개발, 그리고 과학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또한 이곳에는 17세기 영국 왕실 정원을 당시의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인 조경을 보존하고 있는 장소로서도 사용되고 있다.

1844년에 불턴(Decimus Burton)이 설계한 야자 하우스(Palm House) 온실은 길이가 120m에 달하며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온실의 하나로서 전세계 열대지역에서 수집해온 각종 열대 야자나무와 고무나무 등이 상온(섭씨 26도)에서 서식하며 열대우림 기후의 조그만 정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식물원에는 야자 하우스보다 더 큰 온실도 있다. 이 온실에는 전 세계 온대지역(중남미, 호주, 뉴질랜드, 일본, 스리랑카 등)에서 가져온 수많은 식물이 들어차 있다. 이 온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칠레산 와인 야자나무(Chilean Wine Palm; Palmae Jubaea chilensis)는 1846년에 이곳에 씨앗으로 심겨졌으며 현재 직경 60cm, 높이 16m로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高)의 온상식물로 알려져 있다. 이 온실 바로 옆에는 지구의 지질변화와 동식물의 변천 역사를 보여주는 조그만 온실이 있다. 이곳에는 고생대, 신생대의 동식물 흔적을 보여준다. 식물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해양 식물과 어류를 보여주는 수족관도 있다. 그러나 일반 수족관과 달리 식물이 해양과 어떠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열대의 강변 하구에서 볼 수 있는 홍수림(紅樹林; mangrove)에서 자라는 수목과 물고기, 해조류와의 유기적인 공생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식물원으로서는 아주 특이한 것을 전시하고 있다. 필자는 피나무과(Tiliaceae)의 수목을 보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보골(Bogol)식물원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큐 식물원에는 피나무과의 수목(주로 유럽산)조차 엄청나게 많이 심겨져 있었다.


광대한 이 식물원 한 구석에는 미술관도 있다. 2008년에 개관(開館)한 셜리 설우드 미술관(Shirley Sherwood Gallery)에는 15세기부터 전세계에서 식물을 주제로 하여 그린 그림(꽃, 잎, 가지 등)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어떤 그림은 식물의 가시만을 주제로 그렸는데 그림을 잘 그려서 그런지 무섭게 보이는 가시조차도 멋있게 보였다. 특히 18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의 화가들(그때는 사진기가 없었으므로 큰 회사는 화가들을 고용하였음)이 그린 식물 그림도 많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지면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는 수목의 높은 수관(樹冠)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높이 18m의 쇠로 만든 200m 길이의 사다리 길(Treetop Walkway)을 2008년 5월에 숲 속에 만들어 놓아서 이 위에 올라가면 걸어가면서 나무의 꼭대기 부분을 자세히 관찰 하며 조류, 동물, 곤충 등과 연관된 종합 삼림 생태학을 공부 할 수 있다.


현재 큐 식물원에는 자연과학에 관련된 직원 200명, 식물학자와 연구조사직 650명(원예학자 110명 포함)이 근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연구직원은 해외에서 소멸되고 있는 식물종자를 보존하는 일(예, 남미 페루에서 지역 고유수종 500ha 보존)을 하고 있다. 또한 큐 식물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직원들이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전세계 식물원 여러 곳에 파견 나가서 각국의 식물원 관리에 기술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이렇게 큐 식물원이 오랜 기간에 걸쳐 자연과학, 식물 연구와 정원 조경에 기여한 노력을 인정하여 유네스코는 2003년 7월에, 큐 식물원을 세계 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목재업계에 오랜 기간 몸담고 있었던 필자는 이 식물원을 둘러본 뒤, 정말 부러웠다. 오늘날 큐 식물원의 입장요금은 비싼 편이나 연간 200만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이런 훌륭한 식물원을 만드는 것은 필요한 자금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장기적인 계획과 정열, 그리고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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