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소설가 박범신 "우리가 믿는 사랑의 80~90%는 폭력"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 그린 장편 '소소한 풍경' 출간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여전히 '불온하고 위험한' 현역작가로 활동 중인 박범신(68) 씨가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장편소설 '소소한 풍경'(자음과모음 펴냄)이다.

신작 장편은 소녀의 싱그러움에 매혹 당한 70세 시인 이적요의 사랑과 욕망, 질투를 그린 그의 대표작 '은교'와 마찬가지로 파격적이면서도 불가능한 사랑을 그렸다.

소설에는 두 여자와 한 남자가 등장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파르게 넘어온 이들은 가상의 도시 소소(昭昭)로 흘러들어오고 셋은 우연히 같은 집에서 동거하게 된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알게 된 이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각관계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두 여자는 한 남자를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질투하거나 서로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 사람은 서로 보듬어 안고 한 덩어리가 돼 사랑을 나눈다. 소설에는 이들의 이러한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삼각형의 꼭짓점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어져 원이 된다. 삼각형을 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소소한 풍경'의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다."(복도훈 문학평론가)

책을 내고 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씨는 "예전에는 '사랑은 유일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라고 믿었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그것이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유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또 다른 억압이 아닌가 싶었다"고 설명했다.

"젊을 때는 사랑을 갖는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소설에도 드러나 있지만 사랑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누구를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에 빠진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어요. 우리가 믿는 사랑의 80~90%는 폭력이라고 느낍니다."

작가에게 사랑이란 소유한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섹스'라는 소유와 욕망의 용어 대신 '덩어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그래서다.

작가에게 사랑의 완성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남녀라는 성별의 구분조차도 사라지고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갈망은 우리의 DNA 속에 영원히 있는 것이죠. 가장 완전해지는 순간에 대한 욕망 같은 거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 같아요. 어떻게 해도 완전해질 수 없는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갈망을 쓴 소설입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여서일까? 작가는 소설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설정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흐름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그 틈새를 메우는 것은 작가의 검푸른 무의식이다.

그는 "우리를 강력하게 장악하는 생의 심연에서 포르르 솟아올라온 작은 물방울들을 쓰려고 노력했다"면서 "밤마다 어둠 속에 홀로 누워 찬 방바닥에 귀를 밀착시키고 어둡고 먼 지하에서 울려오는 정적이 하는 말들을 들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내가 지금까지 배워온 소설적인 구조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노력했다"면서 "서사의 감수성이 아니라 시적인 감수성으로 읽어달라"고 독자들에게 당부했다.

작가는 소설 집필을 마치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이 '비밀'이라는 단어였다고 소개했다. 생에 존재하는 어떤 미지의 공간을 소설 속에서 끄집어내 독자들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형상화하는 것에 요즘 부쩍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존경받는 작가가 될 것이냐,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작가가 될 것이냐, 제 대답은 사랑 없는 존경보다 존경 없는 사랑을 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섹시하게 늙어가고 싶죠. 노인 작가가 쓸법한 거대담론보다 그래서 이런 위험한 불온한 소설을 쓴 겁니다. 나는 예술가고 예술가로 죽고 싶은 게 제 꿈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상은 일흔답게 점잖게 가고 소설은 위험하게 가자"고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슬픔은 몸속의 가시가 되고 분노는 병이 되는 것 같다"면서 "소식을 접하고 화가 오랫동안 가라앉지 않아서 앓아누웠다. 심지어 소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정서적 상처를 받았다"며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를 다시 낮추면서 고등교육 재정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대학 재정 압박과 가계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환경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가 31일 이틀째 이어지며 ‘셀프조사’의 한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 부족과 노동자 보호 미흡 문제가 맞물리면서, 플랫폼 기업 전반을 겨냥한 제도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29일 서울 중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전산 정보만으로는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고교생 응급환자 사망 사례를 계기로,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단순한 병상 부족이나 이송 지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 의료진의 문제의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에 드러난 실태를 중심으로 고립의 원인과 제도적 대응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부가 등유·LPG를 주로 사용하는 난방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에너지 복지 정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환율과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일회성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이 26일 공개되면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내년 3월 10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 지침을 제시했지만, 원청 책임의 범위와 노동쟁의 인정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