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문턱 낮춘 저상버스, 장애인에게 아직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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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승객이 오면 기사분이 의자를 접어서 공간을 만들어줘야 하거든요. 근데 요구하면 짜증이 돌아와요. 승객들은 또 빨리 가자고 핀잔을 주고요. 서럽죠…."

춘천시는 지난 2007년 장애인 등 교통 약자의 이동 편의를 돕고자 저상버스를 도입했다.

현재 운행하는 72대에 더해 올해 14대를 추가로 도입할 방침이지만, 정작 장애인들의 반응은 회의적이다.
휠체어가 없으면 한발 짝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 이정표(57·춘천) 씨.

최근 춘천 퇴계동 자택에서 4㎞ 정도 떨어진 운교동 동부시장에 가려고 저상버스를 탔다가 또 곤욕을 치렀다.

버스 후문에 달린 휠체어 승강기(리프트)는 요즘 같은 한겨울이면 습기가 얼어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행히 이날은 잘 펴져서 버스에 안전히 오를 수는 있었지만, 한번 펴진 승강기가 어찌된 일인지 접히질 않았다.

아무리 기계 조작을 해봐도 고장 난 승강기가 말을 듣지 않자, 운전기사는 귀찮은 표정으로 승강기를 여러 차례 발로 차 억지로 집어넣었다.

10분 정도를 지체하고 나서야 버스는 출발할 수 있었다.

시설 관리가 제대로 안 된 탓이지만, 운행 시간이 지체되면 괜히 다른 승객들 눈치를 보게 되는 게 이 씨와 같은 장애인의 현실이다.
저상 버스에서 휠체어 이용객을 위한 자리는 정해져 있다.

버스 후문 바로 앞 간이 좌석을 접어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주는 건 원래 운전기사의 몫이다.

하지만, 이날도 이씨는 덜컹덜컹 움직이는 버스 중간에 덩그러니 자리를 잡고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보다 못한 다른 승객의 도움으로 휠체어 전용 자리로 움직였지만, 바퀴를 버스에 고정하는 체어락 장치에는 빈 생수병 쓰레기가 들어가 있었고, 장치를 조작하는 버튼은 아예 빠져서 작동도 안됐다.
다른 고정 장치들도 언제 청소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먼지에 뒤덮여 있었다.

다 늘어난 벨트는 휠체어를 팽팽히 잡아주지 못해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이씨는 휠체어에 앉아 옆에 있는 의자를 손으로 붙잡고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불안한 30분을 보냈다.

버스는 목적지인 동부시장 정류장의 벤치 바로 앞 좁은 공간에다 휠체어 승강기를 펼쳤다.

승강기를 타고 내린 이씨는 벤치와 표지판 기둥에 휠체어를 여러 차례 부딪치면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 씨는 "시청에 만날 민원을 넣어도 저상버스 점검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면서 "기사분들도 작동법을 잘 모르고, 다른 승객들은 '빨리 가야 하는데 좀 서두릅시다'하고 핀잔을 주니 저상버스를 탈 때마다 서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단순히 저상버스 대수만 늘린다고 해서 교통 약자의 이동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에 따르면 승강기 고장으로 승하차를 제때 못하거나 휠체어 바퀴를 고정한 잠금장치가 풀리지 않아 119를 부른 사례 등 저상버스에 대한 많은 불편이 시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발생한다.

춘천지역 운수업체의 한 저상버스 운전기사는 "매일 의무적으로 시설 점검을 하고 있다"면서도 "겨울철에 습기 때문에 승강기가 어는 것은 어쩔 수가 없고, 고장 나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운수업체에 관련 사업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는 관리 책임을 업체 측에만 미룬 채 감독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저상버스 관리는 운수업체가 하게 돼 있다"면서 "시에서 담당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운수 업체와 함께 운전기사 교육을 한 적은 있다"라고 설명했다.

시에 따르면 저상버스 1대당 가격은 일반버스(1억2천만원) 보다 2배 가까이 비싼 2억여원이다.

일반 버스는 운수업체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저상버스는 업체가 7천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나머지 1억3천여만원은 국비와 도비, 시비 등으로 지원해준다.

올해 춘천시가 저상버스 총 14대를 추가로 도입하는 데 국비와 도비, 시비 등 총 18억2천여만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셈이다.

조 현수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애초에 저상버스에 탈 수 없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서 차 대수를 늘리는 건 도움이 안 된다"면서 "지자체가 책임지고 버스 시설을 점검해야 하고, 승객이 안전하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정류장 환경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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