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치유의 영성으로 걸어온 20년, 윤종모 주교 인터뷰

오경숙 기자

“무경계의 사랑과 치유의 영성으로 남은 길을 걷고 싶습니다”

서품 20주년을 맞은 윤종모 주교는 지난 사목 여정을 돌아보며 ‘감사’와 ‘치유의 영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예수의 무경계적 사랑과 붓다의 자비 사상을 아우르며, 종교를 넘어선 영성의 회복을 강조해 온 그는 오늘의 한국 사회와 청년 세대가 안고 있는 불안에 대해 깊은 성찰을 전했다. 서품 20주년을 맞아 그의 신앙 여정과 목회 철학, 그리고 시대를 향한 메시지를 들어봤다.

 [서품 20주년을 맞은 윤종모 주교]
[서품 20주년을 맞은 윤종모 주교]

Q. 서품 20주년을 맞은 소감은 어떠신가요?
-세월이 참 빠르게 흘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시간은 감사의 연속이었습니다.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무엇보다 어려운 길을 묵묵히 동행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남은 삶 또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Q. 지난 20년의 사목 여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성공회는 10년마다 세계 성공회 주교들이 모이는 람베스 컨퍼런스(Lambeth Conference)를 개최합니다. 제 임기 중이던 2008년, 그 역사적인 회의에 참석했던 경험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캔터베리 대성당에서의 예배는 큰 감동이었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초청으로 버킹엄 궁 가든파티에 참석했던 일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2009년에는 개신교 각 교단 총회장들과 천주교 김희중 대주교와 함께 바티칸을 방문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알현했고, 그 자리에서 제 이름이 새겨진 묵주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 묵주는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Q. 사제로서 가장 큰 기쁨과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사제 생활을 돌아보면 어느덧 4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회 사목과 함께 대학에서 가르치며 일관되게 강조해 온 것은 ‘영성의 성장과 치유’였습니다.
제 영향을 받아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분들, 치유를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분들, 명상의 기쁨을 알게 되었다는 분들을 만날 때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부산교구장으로 봉사하던 시절, 제 역량 부족으로 교구를 더욱 활기차게 이끌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Q. 주교서품 20주년 기념 예배에서 ‘예수님의 영성과 붓다의 영성’을 함께 설교하셨습니다. 두 분 영성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폭력, 차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성차별, 인종차별, 빈부 격차, 이념 대립 등 수많은 불행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행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나와 너’라는 경계를 만들어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성경 창세기의 에덴동산 이야기는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분리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사랑은 단순한 윤리적 덕목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연, 나와 너로 분리된 각 존재들을 다시 하나로 잇는 ‘연결고리로서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가 행복하고, 구원받을 방법은 ‘무경계의 사랑’밖에는 없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모든 존재가 사랑으로 연결될 때, 그것이 곧 예수님이 말씀하신 ‘무경계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자아초월심리학자 켄 윌버(Ken Wilber)는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위대한 영성가”라고 말했습니다.
붓다 역시 인간의 고통을 치유한 위대한 영성가입니다. 디지털 문명과 AI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 인간은 과거 어느 때보다 불안과 고독, 우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인 무상(無上), 고(苦), 무아(無我), 그리고 사성제라고 하는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종교를 넘어 심리적·치유적 차원에서도 매우 유용한 치유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와 붓다는 종교적 배경은 달랐지만, 사랑과 자비를 가르친 위대한 스승이라는 점에서는 깊이 통합니다.

Q. 종교 간 대화에 대한 주교님의 신념은 무엇인가요?
-저는 ‘치유명상포럼’을 만들어 천주교, 개신교, 불교, 성공회 등 다양한 종교인과 무종교인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영성이 요구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종교인들은 배타성을 내려놓고, 진리 추구와 정신적 치유라는 공동의 과제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달라이라마의 말처럼 “나의 종교는 친절이다(My religion is kindness)”라는 태도가 어떤 종교를 믿던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고 봅니다.

Q. 청년 세대의 문제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오늘날 청년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일자리 부족, 미래에 대한 불안, 높은 자살률이 그것입니다.
청년들의 불안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구조적인 일자리 부족이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위축입니다.
청년들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 매우 부족합니다. 직업을 못 구하는 청년들이 실의에 빠지거나 절망하여 무기력해지다 보니 자살률도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언론과 사회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는 패배 의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집과 재산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만드는 사회적 압박이 청년들의 희망을 꺾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인생의 목표를 아파트 사는 문제나 강남 지역에 진입하는 데에 둡니까? 젊음의 패기와 용기로 비록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열심히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인생을 즐기며 사는 가치관을 가지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인생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청년들에게 경쟁과 소유가 아닌, 삶의 의미와 건강한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 인생은 비교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Q.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불교도 비슷하겠지만, 기독교의 입장에서 봐도 우리나라의 탈종교화 추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유명한 종교학자인 길희성 교수님은 “종교의 시대는 가고 영성의 시대가 왔다.”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해석하자면, “나는 영성적이긴 해도 종교적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 교회가 영성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심한 교리주의, 물질주의, 축복주의, 배타주의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의 가르침인 사랑과 연민, 그리고 배려와 친절을 실천하는 순수한 영성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성직자들과 교인들이 고집스럽고 배타적인 교리주의를 영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무경계의 영성을 가르치셨는데 말입니다.

한국 교회가 순수하고 진실한 영성을 회복한다면, 교회는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부흥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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