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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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편지 공개, 선비형 군주보다 ‘다혈질·노련한 막후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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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편지 공개로 정조의 다혈질 성격, 막후정치에 능수능란한 모습 등 기존의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9일 정조가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 1796년 8월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보낸 비밀 어찰첩(御札帖) 299통을 공개했다.

정조는 지금까지 탕평책을 시행하고 문치(文治)를 내세운 '개혁 군주'이자 '실학(實學) 군주'로 근엄한 선비형 군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에 발굴된 편지에서 정조는 과격한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며, 정치 공작에도 능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노론 벽파와 대립하면서 노론 시파, 남인 등용에 힘썼다는 정조의 탕평책이 복잡하게 진행되었다는 것도 이 편지에서 보인다.

◇ 다혈질 군주 정조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조는 '개에 물린 꿩 신세'(犬囓之雉), '꽁무니 빼다'(拔尻), '마누라 장의'(抹樓下長衣), '호로자식'(胡種子) 등 구어적 표현뿐만 아니라 비속어도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특히 한문 편지 한가운데 한글로 '뒤?박?'(뒤죽박죽)이라고 갈겨 쓴 부분도 있어 정조가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성격이었음을 드러낸다.

구어를 마구 섞어 쓴 문체는 정조가 정통 고문체를 중시했다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판이하다.

특히 공식 사서(史書)에 따르면 정조는 북학파 실학자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해 "글이 순정(醇正)하지 못하다"며 글을 고쳐 쓰기를 계속 권했고, 문체반정(文體反正)을 명하며 '본래의 정통 고문체(古文體)'로 돌아가고자 주장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조선 후기 정치판도 

이번에 공개된 편지로 정조가 노련한 정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과 그가 진행한 탕평책이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299통의 엄청난 양의 편지는 노론 벽파의 거두 심환지에게 보내진 것으로, 노론 벽파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들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했던 세력이다.

통념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 편지가 오갈 일은 없지만 정조는 심환지와 비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당대 인사들의 동향을 파악, 노론 벽파계 인물들을 통제하려 했고 때로는 심환지와 '짜고 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심환지를 예조 판서와 우의정에 임명한 과정이 이에 해당된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1798년(정조 22) 7월 14일에 정조는 심환지를 예조판서에 임명하고, 8월 28일에는 우의정에 승진 발령했다.

이번 어찰을 보면 정조는 '내가 언제 너를 예조판서(또는 우의정)에 임명할 테니 너는 이렇게 준비하라'는 지침을 심환지에게 사전에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임형택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은 "정조는 정치적 수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라며 "심환지를 자기 심복으로 여기지 않았더라도, 친밀감을 담은 편지를 통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정조는 편지에서 심환지의 아들이 과거 시험에 떨어지자 안타까워하는 말을 전하기도 했고, 기밀 사항인 자신의 병세를 알리며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한 정조는 남인의 중심 인물이었던 체제공(1719~1799)과도 비슷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정조는 비밀 편지로 각 정치세력을 '원격 조종'하는 노회한 정치력을 지녔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정조는 심환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병세를 여러 차례 전했으며, 그가 타계하기 13일 전 1800년 6월 15일에는 "뱃속의 화기(火氣)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중략) 항상 얼음물을 마시거나 차가운 온돌의 장판에 등을 붙인 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일이 모두 고생스럽다"고 호소했다.

이에 정조가 자연사했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심환지가 정조를 독살했다는 기존의 추측은 낭설로 판명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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