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승진 때문에'… 경찰대 출신 간부 대전경찰청장 컴퓨터 해킹 '충격'

"도청 및 작업내용 확인 가능 프로그램 설치 혐의"

이영진 기자

[재경일보 이영진 기자] 경찰대 출신 간부가 승진을 목적으로 지방경찰청장 집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해킹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직속상관 뿐만 아니라 동료의 컴퓨터에 해킹프로그램을 깔고 불법도청을 시도한 것은 경찰 개청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대전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1일 대전지방경찰청장 집무실에 설치된 데스크톱 컴퓨터에 원격제어프로그램과 녹음프로그램(Snooper) 등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해 이 청장이 주변인들과 나눈 대화와 통화 등을 녹음해 온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지방청 소속 A 계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대 3기 출신인 A 계장(기획예산계장)은 지난달 28일 취임한 이상원 청장의 컴퓨터에 도청을 비롯해 외부에서 작업내용을 원격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A 계장은 지난 14일 오후 8시경 청장 부속실 근무자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며 사무실로 들어가 청장이 사용하는 외부망과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에 원격제어 프로그램과 녹음프로그램, 휴대용 마이크를 설치, 집무실에서 이뤄지는 대화와 통화 내용의 녹취 파일이 자동 생성되게 했다. 그 뒤 자신의 사무실 컴퓨터로 청장 컴퓨터에 접속해 17일 오전까지 생성된 녹취 파일을 내려받았다.

A 계장은 15일 오전 본인의 사무실에서 약 1분간 원격제어 프로그램에 로그인한 뒤 청장이 사용하는 외부망 컴퓨터에 아무런 권한 없이 접속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16일 오후 6시경에는 청장의 컴퓨터가 교체된 사실을 알고, 같은 수법으로 청장 사무실에 들어가 해킹프로그램을 재설치하기도 했다. 또 17일 오전 청장이 일부 직원과 대화하는 것을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1분58초 동안 녹음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부속실의 한 관계자는 “지방청 홈페이지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담당계장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설치한다고 했을 때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컴퓨터 처리 속도가 늦어지자 지난 15일 부속실에 컴퓨터 교체를 요구했으며, 지난 17일 사이버수사대 요원의 점검 결과 해킹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이버수사대의 수사는 16일 밤 청장이 퇴근한 뒤에 컴퓨터가 작동하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 청장 부속실 운전요원인 김모 경사의 신고로 시작됐다. 

이날 퇴근하는 이 청장을 관사까지 배웅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던 김 경사는 청장 집무실에서 음량이 저절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이상해 문을 열고 들어간 결과 분명히 꺼져 있던 청장실 컴퓨터가 켜져 있을 뿐 아니라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마우스 커서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에 놀라 직속상관인 부속실장에게 보고하려는 순간 “기획예산계장이 청장님한테 유용한 프로그램을 깔아 놓으시겠다며 다녀갔습니다”라는 메모가 책상에 있는 것을 보고 6층 기획예산계로 달려가 자신의 책상에서 원격으로 청장 컴퓨터를 모니터링하고 있는 정모 기획예산계장을 발견하고 상부에 신고했다.

정 경정이 설치한 녹음 프로그램(Snooper)은 컴퓨터를 켠 상태에서 대화하면 컴퓨터 본체에 설치한 마이크에서 소리를 자동으로 인식해 녹음 파일을 만드는 것으로, 악성 프로그램 등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백신 프로그램이 걸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킹이 들통난 A 계장은 경찰조사에서 "청장의 의중을 미리 파악해 좋은 점수를 받아 승진인사에 이용하려고 해킹프로그램을 설치했다"고 진술했다. 2006년 경정으로 승진한 A 계장은 내년 총경 승진 대상에 오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버수사대는 1만여건에 달하는 로그기록을 확인해 A 계장의 범행 사실을 밝혀냈는데,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 300여개의 대화가 녹음됐고, A 계장이 자신의 컴퓨터로 옮긴 5개의 파일 가운데 1개 파일에는 청장과 부속실 직원의 대화가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정 계장이 내년에 총경 승진대상자에 포함되다 보니 신임 청장의 인사스타일과 주변 지인 등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 같은 무리수를 둔 것 같다”며 “승진에 눈이 멀었다 해도 어찌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19일 A 계장을 직위해제한 뒤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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