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아파트 입주예정자, 대출 연체기록 등재 피하려 잇따라 채무부존재 소송

부동산침체로 아파트 입주예정자와 건설사·은행간 갈등 고조

김진수 기자
[재경일보 김진수 기자] 장기화되고 있는 부동산 침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계속해서 하락하면서 수도권 신규분양 아파트 입주 지연 사태가 잇따르고 주택담보대출도 부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 입주예정자들이 은행 대출 연체기록 등재를 피하기 위해 승소 가능성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은행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계약자가 시공상 하자 등을 이유로 분양계약 해제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중도금대출을 해준 은행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4개 시중은행이 아파트 입주예정자들과 중도금대출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소송을 진행하는 사업장(아파트 단지)은 27곳으로, 대부분 이미 건설사를 상대로 분양계약 해제·취소 소송을 벌이고 있는 입주예정자들이 추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말 국내은행의 집단대출 잔액은 102조4천억원으로 가계대출(451조1천억원)의 22.7%를 차지한다. 이중 잔금대출이 68조원(66.4%)이고 중도금대출이 26조9천억원(26.2%)이다. 집단대출이란 특정단체 내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을 대상으로 일괄적인 승인에 의해 이뤄지는 대출이다. 신규아파트 분양자를 대상으로 한 중도금 대출이 대표적이다.

집값이 높던 2008년에는 이같은 집단 채무부존재 소송이 없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시작된 이듬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2009년과 2010년에는 각각 4개 사업장 계약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심화한 2011년에는 이들 시중은행이 17개 사업장에서 소송에 휘말렸다. 한 사업장에서 복수의 집단소송이 발생한 경우를 고려하면 실제 소송 건수는 이보다 많다. 올해 상반기에도 10개 사업장 계약자들이 소송을 걸었다.

건설사와의 소송에서 이기면 건설사는 중도금을 반환해야 하는데 이 중도금은 대출금 상환에 우선 사용하게 돼 있어 대출금 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게 입주예정자들의 주장이다. 중도금대출이 건설사와 은행간에 이루어지는 일종의 `업무 협약'이고 계약이 해제될 경우 수분양자(분양받은 사람)가 대출금을 낼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은 대출거래약정서상의 차주(借主)는 엄연히 계약자이기 때문에 차주가 대출금 변제의 의무를 진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법리상 입주예정자들이 승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것을 알면서도 입주예정자들이 소송을 내는 이유는 소송기간 중에는 대출금을 연체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아 건설사와 금융기관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법령은 채무자가 채무부존재 소송을 내면 그 기간에는 대출금을 연체해도 신용불량자 등록이나 신용카드 사용정지 등의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채무부존재 소송을 진행하더라도 대출금 이자는 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소송이 끝날 때까지는 불이익이 없을지 몰라도 입주예정자들이 승소하지 않는 이상 차주가 물어야 할 연체금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길게는 2∼3년이 걸리는 소송기간 동안 밀린 대출금과 연체금을 갚지 않을 경우 연체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소송이 끝난 뒤 `연체금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통상 중도금대출 보증을 서는 건설사와 막대한 이자 부담을 떠안은 계약자, 그리고 연체율이 높아진 은행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잇따른 소송과 이자납입 지연으로 은행의 건전성은 나빠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1.18%였던 집단대출 연체율은 5월 말 1.71%까지 상승했다. 주택대출 평균 연체율(0.85%)의 두 배에 달한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관계자는 "채무부존재 소송을 하더라도 연체금은 쌓인다. 결국 연체관리에 진땀을 빼는 은행이나 소송에서 지면 밀린 연체금을 한꺼번에 내야 하는 고객 모두 타격을 받는다"며 "하지만 주택경기가 활성화하지 않으면 이런 소송이 당분간 더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분양계약과 대출계약은 별개다. 그런데도 일부 변호사들이 승소 가능성이 거의 없는 소송을 부추기고 입주자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에 응하고 있다"며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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