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김길태 보고도 놓쳤다'…경찰 수사 총체적 부실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허점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사건 발생 한 달 전에 다른 혐의로 김길태를 잡을 수 있었으나 놓쳤다. 여중생의 납치 가능성을 언급한 지구대의 판단을 형사들이 묵살했다.

결국 경찰의 부실한 초기 대응으로 꽃다운 생명이 쓰러지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경찰청은 과학수사센터장을 단장으로 수사·형사·생안·홍보·감찰 등 기능별 합동점검단을 구성해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현지를 방문, 사건 현장 및 관계자 조사 등 실시했다.

31일 경찰이 발표한 조사결과는 참담했다. 수사의 허점이 이곳저곳에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먼저 경찰은 20대 여성 성폭행 초기 수사 때 김길태를 잡을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길태는 여중생을 납치, 살해하기 한 달여 전인 1월23일 새벽 4시40분께 길 가던 여성 A씨(22)를 인근 건물로 납치해 성폭행했다.

이후 자신의 거주지인 다세대주택 옥탑방으로 끌고 가 8시간 가량 감금하면서 다시 2차례 성폭행했다. A씨는 같은 날 오후 6시께 풀려난 뒤 2시간여 지나 성폭행 사실을 신고했다. A씨는 신고후 부산 동아대의 원스톱지원센터에서 조사를 받았다.

담당 형사 2명은 이튿날 오전 0시20분께 A씨를 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리고 오던 중 김길태의 집에 들렀다. 현장 확인 차원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담당 형사 1명은 김길태와 마주쳤다. 그는 김길태에게 "위층 사는 사람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다. 김길태는 "저는 1층 사는데 화장실에 가는 중이다"라고 말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

합동점검단은 "당시에는 용의자의 얼굴을 몰라 검거에 나서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길태는 이후 잠적했다. 그는 사상구 덕포동 재개발지역의 빈집 등에 은신해 있다가 한 달여 만에 여중생 이모양(13)을 납치해 성폭행하고서 무참히 살해했다.

초기대응도 미흡했다.

여중생 실종 신고 직후 지구대는 납치 혹은 실종에 무게를 실은 반면 형사들은 '단순가출'로 판단했다.

이양의 어머니는 2월24일 오후 10시50분께 실종 신고를 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한 지구대 경찰관들은 화장실 바닥에서 외부인의 것으로 보이는 운동화 발자국이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납치 의심 보고를 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부산 사상경찰서 형사들은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 이양이 평소 '엄마가 오빠만 좋아 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같은 판단으로 인해 형사과장이나 서장 등 지휘부에게 보고가 되지 않았고 여중생 집 주변의 대대적으로 수색도 이뤄지지 않았다.

단순 가출에서 납치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된 시간은 형사팀장이 다음날 오전 7시께 형사과장에게 여중생 사건 관련 보고를 한 뒤였다.

김길태에 대한 제보도 소홀히 했다.

사건 다음날인 2월25일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김길태의 전화를 받았지만 안이한 판단으로 즉시 보고되지 않아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3월7일 미용실 절도사건도 담당자들의 안이한 판단 때문에 보고가 되지 않았다.

경찰청은 이날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지휘책임을 물어 부산경찰청장을 '경고' 조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부산 사상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을 다른 보직으로 전보조치하고 경감 이하 직원은 지방청에서 징계토록 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경찰관 개개인이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기는 자성의 계기로 삼겠다"며 "성범죄 및 실종사건 대응 역량 강화를 위해 법령, 예방 시스템 개선 및 교육 강화에 역점을 둬 대책을 마련·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를 위해 실종 사건을 접하면 현장 상황을 세부적으로 분류해 점수를 매긴 뒤 일정 점수를 넘기면 납치로 판단해 수사를 시작하는 진단표를 만들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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