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용산 전자상가, 서툰 정책과 대기업 이기심에 휘둘린 3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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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용산 김장 시장의 모습 <출처:국가기록정보원>
1970년대 용산 김장 시장의 모습 <출처:국가기록정보원>
1970년대 용산 김장 시장의 모습 <출처:국가기록원>

용산전자상가, 정부와 대기업에 휘둘려온 30년 역사

용산 전자상가 일대는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김장 시장 부지였다. 겨울이 다가오면 전국 각지에서 배송된 무,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젓갈과 갖은 양념 냄새가 진동을 했다. 상인들은 김장 재료를 소달구지에 실어 내리느라 바쁘고 거리 이곳저곳에선 손님을 불러 모으는 호객꾼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낡고 지저분한 동네였다.

그랬던 용산이 지금과 같은 전자 상가가 된 건, 80년대 후반 정부가 세운상가와 대림상가 등 옛 도심지 전자제품 상가를 이주시켜 전자상업 단지를 조성한 뒤였다. 서울의 정 중앙에 위치해 접근성이 뛰어났던 데다 그 시절에도 발품만 팔면 웬만한 물건은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이 커 IT전문가에서부터 노점상까지 유동인구가 몰려드는 지역이 됐다. IT붐이 찾아와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부품과 그 외 전자기기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용산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아, 한때 상가 전체 연 매출이 10조 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용산은 빠르게 몰락했다. 소위 '용팔이'로 통하는 비양심적 판매 행위로 염증을 느낀 고객들은 더 쉽고 편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고, 참여 정부의 성매매 특별법으로 용산역 앞 광장 사창가가 사라지며 유동인구도 크게 줄었다. 역사엔 아이파크 백화점이 들어섰지만 기존 상가와 거리가 상당히 먼데다, 백화점 내 전자관 규모도 커 오히려 손님을 빼앗겨 버렸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조립형 PC 시장도 노트북과 태블릿으로 트렌드가 넘어가며 완전히 죽어버렸다.  

 "용산에선 흥정이 필수다."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스마트폰으로 검색 한 번만 하면 최저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매장에 들어가 제품 가격이 얼마냐고 물는건 상인들 간보는 것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전자제품에 매료된 젊은 고객으로 북적이던 용산은 이제 옛 시절의 향수를 떠올리는 나이 든 고객 밖에 찾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나이 든 상인들은 한숨이 입에 붙었다. 20여 년 전 정부의 말을 믿고 용산으로 이주한 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본래 전자제품 시장의 중심지는 세운상가를 비롯한 종로 일대에 형성돼 있었다. 벼룩시장 형태로 시작된 시장은 상인들이 작은 점포를 열고 중고 물품을 내놓기 시작하며 점점 규모가 커졌다. 판매방식은 낡았지만 상인들은 주도적으로 물건을 판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첨단 기술 시장의 가능성을 역설하며 세운상가의 전자제품 업체를 용산전자 상가로 이전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시장이 급격히 침체됐고, 상인들은 어쩔 수 없이 용산으로 점포를 옮겼다. 규모가 커진 용산은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으나, 그만큼 시대의 변화엔 취약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용산국제업무지구 조감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고통받는건 영세 상인들

서울시, 용산구, 통계청, 국세청 등 관련 국가기관과 지자체는 용산의 몰락과 관련된 제대로 된 지표 하나 갖고 있지 않다. 침체 수준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는 건물주 임대료다. 전재랜드 임대료는 한때 1층 10평 기준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150만 원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며 선인상가 임대료도 3분의 1로 줄었다. 상가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대기업과 손잡고 '재개발'카드를 꺼내 들었다. 서울시는 2000년대 후반 '용산국제업무지구'계획을 발표하며 용산 일대를 대규모 업무지구와 명품 수변도시로 개발하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당초 사업자로 나섰건 삼성물산이 사업이 포기했고, 롯데관광개발은 한국철도공사와 사업 방향을 두고 마찰을 빚어 계획이 정체에 빠졌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4년부터 터미널 상가가 폐쇄돼 철거에 들어가는 등 재개발이 다시 정상 궤도에 오르는 듯 보였으나 삼성물산이 용산세권개발주식회사에 대한 유상 증자를 거부해 결국 최종 부도에 이르게 됐다. 현재는 서울시가 용산을 국제업무지구에서 지정 해제한 상태다. 이후 서울시와 용산구, 국토부 등의 중재로 사업 재개 논의가 계속 언급되고 있으나 명확한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으며, 서부이촌동이 지난 8월 국제업무지구와 관련 없는 자체 재개발에 들어간다고 발표하는 등 국제지구 건설이 다시 재개되려면 난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호텔신라는 면세점 유치 공약으로 '용산 아키하바라'화(化) 선언을 했다. 아키하바라는 일본의 상업단지로, 전자상가로 시작했지만 아이돌과 애니메이션, 게임, 코스프레 등 서브컬처를 등에 업고 세계적 테마단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호텔신라는 면세점과 용산전자상가에 대한 공동 마케팅을 벌이고, 노후화된 전자상가를 개보수하며, 면세점 상가와 연결 시설을 리뉴얼 한다고 공약했다. 여기에 물품 중복 판매로 인한 폐단을 없애고 서비스 개선 교육을 실시해 용산 방문 관광객을 50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용산 아키하바라 선언에 용산 상인들은 시큰둥하다. 한 상인은 "정부와 대기업은 항상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이용한다. 분명히 면세점이 되는 순간 모르쇠로 일관할 거다."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정부와 기업의 설레발에 고통받은 건 영세한 사업자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호텔신라가 지난 8월 시내 사업자 선정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용산 아키하바라 공약은 진행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개발이 중단돼 황폐화된 상태로 남아있는 옛 터미널상가 부지
개발이 중단돼 황폐화된 상태로 남아있는 옛 터미널상가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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