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한국에선 백수지만 중국에선 검사'…보이스피싱 청년들

보이스 피싱

마땅한 직업이 없이 부정기적으로 건설현장에서 막일을 해온 취업준비생 김모(30)씨에게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조직의 검은 손이 뻗쳐온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모(34)씨로부터 "중국에서 일하면 한 달에 400만∼500만원을 벌 수 있다. 전화상담을 하는 일로 아주 쉽다"는 말을 들었다.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꿈에 부푼 김씨는 바로 중국행 비행기를 탔다.

중국에 도착한 김씨를 맞은 곳은 요녕성 대련시의 한 오피스텔이었다.

어두컴컴한 오피스텔에서 김씨는 한국에 있는 불특정 다수에게 전화해 돈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 일을 시작했다.

이 때부터 김씨는 서울중앙지검 소속 수사관이 됐다.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예금을 보호하기 위해 안전한 계좌로 돈을 송금해야 한다고 하면 수십 명 가운데 한두 명은 걸려들었다.

피해자들이 돈을 송금한 계좌는 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관리하는 계좌였다.

처음에는 범죄라는 죄책감에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중국에 입국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겼다.

여기에 조직에서 벗어날 경우 한국에 있는 가족이 다칠 수 있다는 암시를 받았기 때문에 보복도 두려웠다.

양심의 가책도 잠시, 한두 차례 보이스피싱에 성공하고 성과금 명목의 목돈을 만지자 김씨는 점차 범죄의 늪에 빠져들었다.

비자 연장을 위해 귀국했을 때 조직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던 그는 스스로 중국 보이스피싱 조직으로 되돌아갔다.

보이스피싱에 적응한 김씨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자영업을 하다가 문을 닫은 친구 1명을 조직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충남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김씨처럼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전화금융 사기를 벌인 혐의로 10∼30대 한국인 조직원을 18명을 구속했다고 26일 밝혔다.

김씨 등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중국 대련의 한 오피스텔을 빌려 사무실을 차려 놓고,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다고 속여 11억3천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국내 총책 이모(20)씨의 선후배들로 대부분 '고액의 취업을 알선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범행에 가담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검찰 수사관인데,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통장의 돈을 안전한 계좌로 송금하라"고 속였다.

피해자들은 적게는 700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까지 이들에게 돈을 보냈다.

이들 대부분은 사기로 챙긴 돈을 유흥비로 탕진, 빈털터리가 된 채로 국내에 돌아와야 했다.

노세호 충남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장은 "단기간 고액을 벌 수 있다며 중국 등 해외취업을 제안하는 경우는 불법을 의심해야 한다"며 "특히 돈을 운반하는 등 간단한 일을 하고 수십만원의 일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은 전화금융사기 등 불법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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