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속에 만들고도 수준미달 지적만

윤근일 기자
국정 역사교과서 긴급 분석 기자회견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과제였던 국정 역사교과서가 지난 28일 현장검토본이 공개된 가운데 역사학자들과 시민단체들 심지어 보수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맹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검토본 이전 단계인 초고본과 개고본의 파일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추진 과정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검증 방법과 향후 수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역사교육연대회의, 한국서양사학회, 고고학고대사협의회는 30일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28일 공개한 역사 국정교과서의 내용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은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세계사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된 한국근현대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서술돼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사적 맥락은 결여한 채 한국이 인류공영에 기여한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할 경우 청년세대에게 협소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점점 부각되고 있는 동남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 대해 "국정교과서가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무관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 교수는 주장했다.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이익주 교수는 "교과서 공개 3일 전에야 뒤늦게 공개된 편찬기준마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2000년대 고려시대사 연구경향은 국제관계사, 친족제도, 여성의 지위 등이지만 이 분야 성과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기존 교과서보다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현대사 부문에서 국가폭력과 인권탄압 서술누락을 큰 문제로 지적하며 일종의 정훈교과서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등 국가폭력사건을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며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된 사건임에도 일체 서술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강성호 서양사학회장은 "함무라비 통치보다 400여 년 전에 우르남무 법전이 발굴됐으므로 함무라비 법전을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기술한 것은 오류"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국정교과서 초고본이 삭제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는 30일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의 이전 단계인 초고본과 개고본의 파일을 편찬위가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 역사교과서의 기초자료를 의도적으로 폐기, 계획적인 증거인멸을 한 것"이라며 "추진과정 전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특위 관계자는 "편찬위에서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내용을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11월에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뒤에는 최대한 논란이 되지 않도록 내용을 손봤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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