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AI 안전지대 없다" 동물복지농장 첫 감염…방역 '속수무책'

지난달 16일 전남에서 처음 신고된 조류인플루엔자(AI)가 역대 최고 속도로 번지면서 전국의 오리와 닭 사육 농가들이 초토화되고 있다.    한 달여 만에 2천만 마리에 육박하는 가금류를 '생매장'하게 만든 AI는 '국가적 재앙' 수준으로 확산했다.  축산농가들은 "닭과 오리를 모두 살처분해야 AI가 끝나는 것 아니냐"며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방역 당국 일부에서는 "AI가 이미 통제 수준을 벗어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AI 안

2012년 인증제 도입후 첫 발병…'위생 1번지' 유기축산물 농장도 당해
농가들 "방역당국, 늑장 살처분 조처로 AI 옮았다"며 불만 제기

지난달 16일 전남에서 처음 신고된 조류인플루엔자(AI)가 역대 최고 속도로 번지면서 전국의 오리와 닭 사육 농가들이 초토화되고 있다.

한 달여 만에 2천만 마리에 육박하는 가금류를 '생매장'하게 만든 AI는 '국가적 재앙' 수준으로 확산했다.

축산농가들은 "닭과 오리를 모두 살처분해야 AI가 끝나는 것 아니냐"며 공포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방역 당국 일부에서는 "AI가 이미 통제 수준을 벗어났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동안 'AI 안전지대'로 꼽혔던 동물복지 축산농장과 유기축산물 인증 농장에도 AI가 덮치면서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2012년 동물복지농장 제도가 도입된 이후 AI 걸린 동물복지농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충북 24곳, 강원 8곳, 16곳 등 전국적으로 100여 곳이 동물복지농장 인증을 받았다.

맹위를 떨치며 수많은 닭과 오리를 제물 삼아 '역대 최악의 AI'로 불린 2014년에도 동물복지농장은 AI의 안전지대였다.

그러나 올해 안전지대가 허물어졌다.

20일 충북 음성군에 따르면 지난 12일 삼성면 홍모씨의 동물복지농장에서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산란계 1만3천 마리를 키우는 이 농장의 닭 20여 마리가 폐사했고, 간이검사에서 AI 양성반응이 나와 살처분이 진행되고 있다.

동물복지농장은 일반 양계농가와 사육 환경에서 큰 차이가 있다.

축산법에 따르면 산란계를 기준으로 닭 1마리의 최소 사육 면적은 A4 용지(0.062㎡) 한 장도 되지 않는 0.05㎡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좁은 케이지로 된 닭장에 갇혀 사육되고 있다. 날개를 펴기도 쉽지 않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자란 닭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케이지 내의 배설물 등으로 면역력이 약화할 수 있다. 내성도 약해져 전염병이 유입되면 삽시간에 번지게 된다.

동물복지농장은 사정이 다르다. 최소 사육 면적은 한 마리당 0.14㎡다. 톱밥이 깔린 바닥에서 생활하고 닭이 올라앉을 수 있는 홰도 설치해 놓았다. 닭이 톱밥을 몸에 끼얹어 기생충 등을 털어내는 '모래 목욕'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자연 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이런 조건에서 기른 닭은 상대적으로 전염병 등의 내성이 강해진다.

사료부터 유기인증을 받은 제품을 쓰는 등 철저한 위생관리 체계를 갖춰야만 하는 유기축산물 농장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유기축산물 인증을 받은 음성군 생극면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도 지난 13일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최근 AI 확진 판정을 받아 7천여 마리의 닭이 살처분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AI 청정지대'로 꼽혔던 동물복지농장과 유기축산물 인증 농장들이 올해는 AI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전국 100여 곳의 동물복지농장, 90여 곳의 유기축산물 농장 가운데 음성지역 외에는 추가로 AI가 나오지 않았으나 이제는 안심할 수 없다.

방역 당국이 AI 전파 경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 과정에서 방역 당국의 늑장대처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홍씨는 "지난달 24일부터 3㎞ 방역대에서 잇따라 AI가 발생했는데도 살처분 작업이 지연됐다"며 "이 과정에서 주위로 퍼진 분진으로 우리 농장도 AI에 감염되는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11월 27일 AI가 발생한 인근 농장의 경우 살처분이 지난 6일에야 시작돼 16일까지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인근 지역으로 퍼졌다는 것이 농가들의 주장이다.

살처분이 늦어지는 동안 AI가 더 번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홍씨 농가 살처분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12일 의심 신고가 됐으나 7일 뒤인 지난 19일부터 살처분이 시작됐다. 이 살처분도 홍씨가 직접 한 것이다.

홍씨는 "방역 당국이 AI 발생 신고를 받고도 미온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바람에 직접 업체를 불러 어제야 살처분을 시작했다"며 "당국의 늑장 대응과 관련해 행정소송을 낼 예정이며, 필요하면 형사소송도 검토하겠다"고 강하게 불만을 터트렸다.

음성군의 한 양계 농민은 "다행히 우리 농장의 닭들은 AI에 감염되지 않았지만, 동물복지농장까지 AI 바이러스가 침투하는 것을 생각하면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사는 듯하다"며 "언제 AI가 습격할지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를 다시 낮추면서 고등교육 재정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대학 재정 압박과 가계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환경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가 31일 이틀째 이어지며 ‘셀프조사’의 한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 부족과 노동자 보호 미흡 문제가 맞물리면서, 플랫폼 기업 전반을 겨냥한 제도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29일 서울 중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전산 정보만으로는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고교생 응급환자 사망 사례를 계기로,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단순한 병상 부족이나 이송 지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 의료진의 문제의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에 드러난 실태를 중심으로 고립의 원인과 제도적 대응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부가 등유·LPG를 주로 사용하는 난방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에너지 복지 정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환율과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일회성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이 26일 공개되면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내년 3월 10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 지침을 제시했지만, 원청 책임의 범위와 노동쟁의 인정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가 국가 책임을 전제로 한 배상·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넘게 이어진 피해 구제 논의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이번 방침은, 피해자 구제 방식은 물론 향후 재난 대응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교사 보호 필요성이 현장과 여론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학생 인권 침해와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맞서고 있다. 교육 당국은 제도 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적·행정적 쟁점 검토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