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중세유럽같은 대한민국, 메르스 사회불안에 떠도는 유언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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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을 몰고다니는 닥터 쉬나벨
흑사병을 몰고다니는 닥터 쉬나벨
흑사병을 몰고다니는 닥터 쉬나벨

중세 유럽은 음울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종교 억압과 변화 없는 봉건 제도,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문화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페스트 창궐'이었다.

적게는 30%, 많게는 70%가 넘는 인구가 목숨을 잃는 상황에 교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고, 왕실 역시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 무엇 때문에 페스트가 생겼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지 모르니 아무도 백성을 통제하지 못했고, 그 탓에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 했을 엽기적인 사건들이 벌어졌다. 위기의 순간에서 무지(無智) 함은 더 심한 혼란을 불러왔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다.

 

1. 페스트를 피해 물 속에 숨다

흑사병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당황했다. 주변 사람들이 픽픽 죽어나가지만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언제 자신도 병에 걸릴지 몰라 초조할 뿐이었다. 아직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끼리 대책 회의를 하던 중 한 사람이 말을 꺼냈다.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뭐 특별히 먹은 것도 없는데 병에 걸리다니... 마치 공기를 타고 퍼지는 것 같다니까."

공기를 타고 병이 퍼진다..? 이 땐 아직 공기 중 감염은커녕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것 말고는 딱히 다른 원인이 떠오르지 않았고, 한참 생각해보니 그럴 듯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개체가 공기라면 방 안에서 숨만 쉬어도 병에 걸리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 그때 누군가 떠 한 마디를 던졌다. "지하수로 물에 들어가면 잠시나마 공기에서 피할 수 있으니 지상보단 병에 걸릴 위험이 적지 않을까요?"

당시 대도시엔 지금의 하수도와 같은 지하 수로 시설이 있었다. 냄새나는 수로에서 사는게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지만 죽는 것보단 나았다. 사람들은 지하수로에 판자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스트 매개체는 공기가 아닌 쥐와 벼룩이었고, 병원균이 득실대는 수로에 장시간 있다보니 페스트는 더 빨리 퍼졌다. 죽은 사람들의 시체는 지하 수로에 방치돼 물을 오염시켰고 이 물이 퍼지며 도시에 2차 광역 감염을 일으켰다.

 

죽음의 무도에 그려진 흑사병
죽음의 무도에 그려진 흑사병

2. 종교 치료로 병은 더 멀리 퍼져

페스트를 막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자 사람들은 이를 신이 내리는 천벌이라 여기기 시작했다. 교회에 가서 죄를 빌면 용서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들 교회에 몰려들었고, 흑사병은 교회 인파 사이로  빠르게 퍼진 탓에 사망자가 속출했다. 병의 근원지가 된 교회는 황폐화돼 사람 발길이 끊어졌다.

기도할 장소가 사라지자 '채찍질 고행단'과 같은 극단적 종교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이들은 신이 징벌하는 이유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며 스스로의 몸을 채찍질하며 각지를 순례했다. 하지만 이들이 오지까지 돌며 순례를 한 탓에 페스트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서도 창궐했으며, 병을 피하려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간 사람들까지 감염돼 피해자는 더 늘어났다. 심지어 죄를 씻으러 순례를 시작한 이들이 굶주림에 지쳐 폭도로 돌변하는 일도 있어, 약탈자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페스트로 인해 인구의 30~50%가 희생됐다.
페스트로 인해 인구의 30~50%가 희생됐다.

3. 에메랄드와 대소변을 먹는 사람들

먹는 것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들이 약으로 먹었던 것 중 가장 귀한 것은 '에메랄드 가루.'였다. 여디서 나온 유언비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에 빠진 자들은 에메랄드를 구하려 백방으로 사람을 보냈고, 이들이 죽기 살기로 에메랄드를 찾아다닌 덕에 그 병은 외진 광산과 산맥 같은 곳까지 퍼졌다. 끝내 에메랄드를 구하지 못한 자들은 유리로 만든 가짜 에메랄드 가루를 구해오기도 했다.

가장 불결한 약은 흑사병에 감염되지 않은 사람의 대소변이었다. 감염자들은 이것를 얼굴과 온몸에 바르고 먹었는데,  흑사병으로 생긴 종기와 상처 위에도 오물을 발랐던 탓에 병이 더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행기간동안 벌어진 유럽인의 유대인 학살
유행기간동안 벌어진 유럽인의 유대인 학살


4. 유대인 학살

시간이 지나며 감염자의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돌아갔다. 흑사병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유대인 부락은 유독 피해가 적었는데, 이는 유대인이 다른 유럽인들과 떨어져 고립생활을 한 데다, 종교 교리 때문에 하루에 한 번은 목욕을 하는 청결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지한 유럽인들은 "유대인이 흑사병 원인이라 병에 걸리지 않는 거다."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오래전부터 뿌리내린 유대인 혐오증까지 겹친 탓에 유언비어는 분노를 불러왔고, 수많은 유대인이 그들 손에 억울하게 학살당했다.

 


5. 2015년 메르스 카톡 괴담

메르스 감염자가 발생한 후 정부는 환자가 진료를 받았던 병원이나 환자 거주지 등 중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사회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라 했지만, 덕분에 국민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질병에 놀라 불안해했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괴담과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각종 SNS를 타고 확산된 탓에 메르스에 대한 잘못된 정보는 순식간에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1급 긴급재난 사태라느니, 치사율이 80%가 넘는다느니, 사실 별 거 아닌 질병인데 박근혜 정부가 음모를 꾸미는 거라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말들이 터져 나왔고, 국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감염되었음에도 신고를 안 하고, 별거 아닌 일처럼 출장을 가고, 메르스에 걸렸다고 119를 호출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다. 덕분에 메르스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진압하기 버거운 규모로 커졌다.

병 자체 위험성보다 더 무서운 게 질병으로 인한 사회혼란이다. 우리는 중세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정보가 없으면 무력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정부는 국민에 믿고 따를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국민이 시민의식을 갖고  국가 통제를 따랐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메르스 방어에 실패한 대한민국은 날이 갈수록 중세 유럽처럼 암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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