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마치 국가 전체가 허언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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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허언증만큼 안타깝고 슬픈 병도 없을 거다. 있지도 않은 자존감에 집착해 괴로워하다 종국엔 모두의 웃음거리로 전락하는게 필연적 결말이니.

단순한 허풍이나 과장과 달리, 허언증은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는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거짓말에 동반되는 방어기제 (동공이 흔들리거나 특정한 손짓을 하는 등의 행동)도 발견되지 않는다. 몇 년 전만 해도 허언증이 희귀한 병처럼 여겨졌지만, 유명인들의 잇다른 허언증 논란과, 왜곡된 자기 포장 경향이 퍼지면서 대중에 익숙한 단어가 됐다.

 

? 신정아 학위 위조와 학벌에 대한 자성... 무엇이 껍데기인지 모르나?

'허언증'이란 병명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은 신정아였다. 비록 신 씨가 의료기관에서 허언증 진단을 받았던 적은 없지만, 학력위조 사건 수사 과정에서 보인 모습은 허언증을 의심하기 충분했다. 그녀는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예일대에 다서 확인받아오겠다."라며 출국을 감행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말이 거짓이란 걸 자각했더면 그런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을 거다. 신 씨에 이어 김옥랑, 윤석화, 강석, 이현세, 심형래, 이지영, 주영훈, 최화정, 이창하, 이경영, 오미희, 장미희, 김혜진 등 사회 전반 유명인사 학력위조 행위가 들통 나며 학력위조 문제가 크게 불거졌었다.

이 사건은 '학벌'에 대한 자성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학벌이 뭐기에 웃음거리가 될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하고 또 믿었을까? 이들 대부분이 자서전이나 인터뷰에서 자신의 학력을 강조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사회가 왜곡된 가치관을 주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래 학력은 그 사람이 지성과 전문지식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지만, 우린 언제부터인지 본질보단 몇 글자 휘휘 써제낀 학교명에 휘둘리게 됐다. 속살을 꺼내 먹을 생각 없이 껍데기만 취해 만족해하는 꼴이다. 거짓말 몇 마디면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치 없는 것인데도.

 

? 천재 소녀? 추악한 학벌주의 태평양 너머 미국 땅에서도

하지만 이 껍데기가 생각보다 많이 단단한가 보다. 껍데기를 깨고 속살을 꺼내먹기가 쉽지 않다. 얼마 전엔 학력과 관련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엔 해외 거주하는 한인 고등학생 이야기였다. 미주 중앙일보는 이 학생의 제보를 받고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동시 합격했다는 보도를 했지만, 불과 며칠 후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 학생이 신대륙을 점령한 영웅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댄 국내 매체들도 부랴부랴 수정 보도를 올렸다. 이 과정에서 18살짜리 여고생은 미주 한인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부모님이 태어난 저 멀리 한국에서까지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하버드와 스탠퍼드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MIT가 주관한 연구 프로그램 경연 대회에서 입상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라는 그녀와 가족의 증언은 모두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이었고, 또 당사자가 너무나 확고하고 당당하게 진실이라 주장했기에 대중은 이 학생이 허언증을 앓는 것이라 의심했다. 이 학생의 아버지가 12일 언론에 보낸 이메일엔 "앞으로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겠다."라는 말이 씁쓸하게 적혀 있었다.

 

? 결국엔 또 자기비판... 국가 전체가 허언증을 앓는것 같다

허언증 환자가 동통적으로 갖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외롭고 불우하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고립된 상황을 오래 겪은 적이 있다 ▲현실 도피 열망이 강하다 ▲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갖고 있다

이 학생은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엘리트 고등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국내로 치면 외고, 과고에 해당하는 곳인 것 같다. 당연히 학생들 간 경쟁도 치열하고 견제도 심하다고 한다. 한국판 입시가 해외 동포들 사이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거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등장에 환호했던 언론은 머쓱해졌다. 반짝거리는 껍데기를 파헤쳐 보니 학벌 지상주위와 한국식 교육의 추악함은 태평양 너머에서도 계속되고 있었고, 천재 소녀는 경쟁에 지쳐 힘들어하는 허언증 환자였다. 침체된 국가 분위기를 다소 덜어줄 거라 생각한 신나는 기삿거리는 오보로 판명된 뒤 자기비판으로 귀결됐다. 마치 국가 전체가 허언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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