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수색동 물빛어린이집 폐원으로 갈 곳 잃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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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학습 체험하는 어린이집 아동들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야외 학습 체험하는 어린이집 아동들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야외 학습 체험하는 어린이집 아동들 (본문 내용과 관련 없음)

"엄마, 그 아이는 우리와 좀 다를 뿐이야. 같이 노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아이가 한 말이 대견스러웠다. 처음 이 어린이집에 왔을 때만 해도 "엄마 누구는 막 소리 지르고 그런다?"라며 친구를 별종처럼 보던 아이였다.

은평구 수색동에 위치한 물빛 어린이집은 장애 아동 11명과 다문화가정 아동 5명 등 82명의 아이들이 어울려지내는 곳이다. 이 동네 엄마들 사이에선 교육 문화가 훌륭하고 점심밥도 깔끔하고 영양가가 있게 하는 '개념 어린이집'으로 인기가 높다.

특히 장애 아동 부모에겐 구세주 같은 곳이다. 남다름이 범죄인 양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이 나라에서, 혹시나 아이가 차별에 상처 입을까, 삐뚤어질까 고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어린이집을 순례해야 한다. 한 장애 아동 학부모는 다른 어린이집에서 상담을 받다 보육교사가 5살이 넘은 아이에게 "너 똥, 오줌은 가릴 줄 아니? 말은 할 줄 알고?"라고 묻는 걸 보고 기겁했다. 이런 곳에 내 아이를 맡길 순 없다는 생각에 바로 뛰쳐나왔다고 한다.

오랜 시간 많은 어린이집을 돌아 도착한 곳이 물빛 어린이집이었다. 차별 없는 교육, 장애를 이해하는 친구들, 깔끔한 시설에서 아이는 행복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인기도 좋아서 이 어린이집에 들어가려면 10개월 대기는 기본이라고 한다. 부모들은 기다림을 감수한다. 남이 아닌, 내 아이를 위한 것이니까.

10개월 기다려 들어간 물빛 어린이집 돌연 폐원, 우리 아이는 갈곳이 없다.

하지만 지난 5월, 수색동 4구역이 재개발되며 물빛 어린이집이 폐원될 거란 소식이 들렸다. 데드라인은 9월 중순, 채 4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은평 구청에선 다른 어린이집을 찾아보라는 말뿐이다. 동 전체가 재개발 대상이라 이전할 어린이집도 없었고, 다른 지역을 뒤져봐도 교육과 시설이 성에 차지 않는다. 국공립을 찾으면 대기 기간만 4개월이 넘는다. 이럴 거면 뭣하러 10개월을 기다렸던 건가?

어떻게든 대응하자는 생각에 엄마들이 탄원서 들고 구청을 방문했으나 쫓겨나다시피 돌아나왔다. 국민신문고와 구청 민원, 보육포털사이트에도 민원을 제기했지만, 구청에선 6월 11일에 설명회를 할 테니 기다리란 답변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설명회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관청의 묵묵부답에 엄마들은 분노했고 의심만 늘어났다. 뭔가 떳떳하지 않으니 말을 못하는 건 아닐까? 부지 매각 예산으로 11억이 구청에 돌아가는데, 엉뚱한 곳에 유용되는 건 아닐까? 이전 비용이면 새 어린이집을 3개는 신설한다는데 왜 굳이 폐원을 선택한 걸까? 은평구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수도권 꼴찌라는데?

아이 교육이 담당 공무원 실적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의혹은 불타오른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은평구청도 열심히 뛰고 있다. 하지만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은평구청 역시 놀고 있었던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힘든 상황이다. 당장 80명 넘는 아이가 갈 곳이 없게 됐는데 맡아줄 시설이 없다. 11억 원은 어디에 쓰이냐고 물어보니 어린이집 신설 예산으로 편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마땅한 부지가 없어 착공은 못하고, 기존 사립 어린이집을 국공립으로 변경하고 반을 증설해 운영할 계획이다. 백방으로 가용 시설을 알아보고 있지만, 다른 지역도 여유가 없어 쉽지 않다. 만기일까지 대안을 못 찾을 경우 구청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학급을 증설해 물빛 어린이집 아이들을 받을 예정이다. 폐원 지시만 내리고 방관한 건 아니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첫 번째는 행정상 명확한 고지의 의무를 위배했다는 점이다. 구청 측에선 민원 대응 메일을 발송했다고 하지만, 위 내용은 학부모에게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다. 메르스 감염을 우려해 설명회를 취소한 건 감안할 수 있지만, 그 이유를 공지하지 않아 오해를 키운 건 대처가 미흡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학부모들이 집행에 의문을 갖고 아고라 등 웹사이트에서 폐원 취소 서명운동을 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던 탓에 공공기관에 대한 불신만 초래했다.

두 번째는 행정 절차상 흠결이 의심된다는 점이다. 법령에 의하면 사전통지, 청문, 이유 제시 등 저차를 결여한 행정행위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행위로 간주된다. 물빛 어린이집의 경우 폐원은 9월 중순이지만, 재개발 착공 계획은 아직 미정이라고 한다. 명확한 계획 수립과 공지가 있기 전 폐원 처분이 있었던 거다. 재개발 절차에 들어가기 전 학부모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고, 폐원 뒤 아이들이 이전할 시설을 준비하는 게 먼저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절차를 준수했다면 학부모와 아이들이 난관에 빠질 일도, 은평구가 급박하게 시설을 찾으러 뛰어다닐 일도 없었을 거다.

마지막은 '차가운 행정'을 했다는 점이다. 행정의 목표는 공익을 실현하는 거다 . 하지만 은평구청은 어린아이들이 정든 친구들, 선생님과 헤어져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점, 물빛 어린이집 제공한 만족할만한 수준의 교육, 아이에게 질 좋은 교육을 주기 위해 10개월 이상 기다린 학부모 노력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재개발은 도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사업이다. 하지만 관청은 기업과 다르기에 이윤만 바라보며 사업을 추진하면 안 된다. 시민 한 사람의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면, 은평구는 이토록 가볍게 폐원 결정을 내리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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