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당신이 여친과 항상 똑같은 데이트만 하는 이유... '젠트리피케이션'

-
예술의 거리에서 '클럽촌'으로 변한 홍대

 

예술의 거리에서 '클럽촌'으로 변한 홍대
예술의 거리에서 '클럽촌'으로 변한 홍대

"데이트할 곳이 없다."

카페와 영화관이 골목마다 널려 천지삐까리인데 무슨 소리냐고? 여자친구가 한탄했던걸 잘 기억해 보라. 왜 우린 매일 똑같은 곳만 가냐고.

글쎄, 실제로 똑같은 곳에 가진 않았겠지만, 요즘 데이트 코스는 다 거기서 거기다. 모던, 혹은 복고 스타일의 전형적인 카페엔 소품도 인터넷 매장에서 주문한 비슷비슷한 것들 뿐이고, 명동에 가나 홍대에 가나 신사동 가로수길에 가나 똑같은 프랜차이즈 음식점, 옷가게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를 보는 곳도 언제나 CGV 아니면 롯데시네마다. 거기다 당신의 똑같은 얼굴까지 매일 보니 지겨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나.

젠트리피케이션, 번화가를 침체시키는 주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중산층이 노후한 도심 지역에 신축 건물을 지으며 진입하는 현상을 말한다. 도시 개발이 시작돼 월세가 오르면 이를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원주민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본래 이 단어는 낙후 지역의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용어였으나, 최근엔 자본에 의한 원주민의 이탈이란 부정적 측면에 무게가 실렸다.

한국에선 의미가 조금 달라져, 임대로가 저렴한 도심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 등이 생겨 인구가 늘어나면 대규모 프랜차이즈점이 입정해 임대료가 치솟기 시작하고, 그 결과 본래 있던 매장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 평범한 대구모 상업지구로 변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최악은 개성이 사라진 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해 유동인구가 줄어들고, 침체 지역으로 전락해 상업적 가치를 잃는 것이다. 한국에선 종로 서촌, 홍대, 경리단길, 삼청동, 신사동 가로실 등 번화가 상권이 침체되는 것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안 좋은 사례로 흔히 꼽힌다.  

예술가, 낙후한 도심 살리는 해결사가 되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존재 의의가 부각된 건 예술가들이다. 최근엔 낙후된 도심에 예술가 공동체를 정책적으로 유치해 도시재생을 도모하는 정책이 경쟁적으로 추진되기도 했다. 이를 '문화 클러스터(Cultural Cluster)라고 한다. 이 명칭은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보통 예술가의 창작 동통체 내지 관련 네트워크를 지칭한다.

문화클러스터는 런던의 이스트엔드나 뉴욕의 윌리엄스버그, 베이징의 다산쯔 등 세계 각국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국내에선 마포구 서교∙동교동 부근이 인디밴드 붐과 예술가들의 자발적 예술활동을 통해 '홍대'라는 특색 있는 거리를 형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문화클러스터 직접적인 경제 효과는 크지 않지만, 여러 사회적 효과를 통해 도시 재생을 촉발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역 이미지가 개선되고 사회 결속력이 강화되며, 시민 문화향유 기회가 확대되면 삶의 질도 높아진다. 문화공연을 즐기러 외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소매업 매출도 늘려 경제적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다만 한국의 경우 도시의 문화적 기반이 취약해 자생형 문화클러스터 수가 적은 것이 문제다. 공공기관이나 민간단체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클러스터 수는 많이 늘었지만, 역사가 짧고 소규모이며, 아직까지 성숙한 네트워크를 갖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물리적 자산가치를 중시하는 도시개발 관행으로 예술가 네트워크의 가치와 중요성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만든다고 만들어지는게 아닌 거다.

성동구, "눈앞의 이익보단 지역 가치를 공유하겠다."

이에 성동구는 24일,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역문화를 육성하기 위한 조례를 지정했다. 성동구는 본래 준동업지역이었으나, 2012년부터 젊은 예술가와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이 하나 둘 둥지를 틀면서 '뜨는 동네'가 되었다. 성수역 인근의 빈 공장과 창고에서는 전시회와 패션쇼가 열렸고 서울숲길의 낡은 주택들은 개성 강한 식당과 카페,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 등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성수동이 인기를 끌면서 임대료와 집값이 상승했다. 성수동의 변신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성수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성동구가 재정한 조례 내용은  도심재생사업을 펼쳐 지역상권 발전을 유도하는 것으로. 지속가능 발전구역에서는 주민들이 자치조직인 협의체를 구성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점업체를 선별할 수 있게 했다. 지역 주민에게 선호하는 업체를 보호하고 지켜낼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정원오 구청장은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는 지역 문화를 만들고 높아진 지역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상생의 길을 걷게 되기를 기대한다"라며 성동구가 자생적 문화거리로 자리잡기를 기원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를 다시 낮추면서 고등교육 재정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대학 재정 압박과 가계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환경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가 31일 이틀째 이어지며 ‘셀프조사’의 한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 부족과 노동자 보호 미흡 문제가 맞물리면서, 플랫폼 기업 전반을 겨냥한 제도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29일 서울 중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전산 정보만으로는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고교생 응급환자 사망 사례를 계기로,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단순한 병상 부족이나 이송 지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 의료진의 문제의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에 드러난 실태를 중심으로 고립의 원인과 제도적 대응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부가 등유·LPG를 주로 사용하는 난방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에너지 복지 정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환율과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일회성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이 26일 공개되면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내년 3월 10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 지침을 제시했지만, 원청 책임의 범위와 노동쟁의 인정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가 국가 책임을 전제로 한 배상·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넘게 이어진 피해 구제 논의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이번 방침은, 피해자 구제 방식은 물론 향후 재난 대응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교사 보호 필요성이 현장과 여론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학생 인권 침해와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맞서고 있다. 교육 당국은 제도 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적·행정적 쟁점 검토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