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웰다잉법, 인간의 죽음에 대한 '존엄' 인가, '계급화'인가?

-
불치병을 앓으며 안락사 허용을 요청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칠레의 14세 소녀. 이 소녀는 결국 합병증으로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불치병을 앓으며 안락사 허용을 요청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칠레의 14세 소녀. 이 소녀는 결국 합병증으로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불치병을 앓으며 안락사 허용을 요청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칠레의 14세 소녀. 이 소녀는 결국 합병증으로 지난 5월 세상을 떠났다.

환자가 자신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웰다잉법'이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웰다잉(Well-dying)법이란,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 가운데 의식이 살아 있을 때, 환자 자신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를 표시했거나 임종기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또 연명의료에 대해 어떤 의사를 가졌는지 추정할 수조차 없는 경우 등에 한해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도록 한 법이다.

웰다잉은 '죽음을 선택한 권리'와 함께 '아름답고 편안한 죽음을 준비할 권리'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존엄사', 혹은 '안락사'의 개념과 통하는 부분이 있다. 웰다잉 사업의 대표 격인 상조업이 이미 사회적으로 정착된 만큼 웰다잉 법도 발효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미 지난 2009년 대법원에서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신체 침해행위에 해당하는 연명치료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고소득층이 호스피스, 완화치료기관을 통해 '품위 있는' 죽음을 영위할 수 있게 된 반면, 사회적 취약계층은 연명의료 중단에 내몰리는 '죽음'의 계급화 문제가 심각해질 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종교계와 장애인단체 등에선 연명의료 중단이 장애인, 노숙자, 빈민 등 사회적 취약층에 집중될 수 있다며, 사회적 기반이 튼튼하게 마련되지 않을 경우 계층 간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연명치료중단제도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호스피스 완화치료 제도 확립과 시설 확충, 임종과정 환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선결조건으로 제시했으나, 호스피스 전용병상이 채 900개가 되지 않아 말기 암 환자의 12%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 제도가 전면적으로 시행되기 전 기반 시설을 확충해야 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가족이 없는 상태로 시설에 거주하는 환자나 발달장애인의 경우, 시설 책임자가 법정대리인으로 지정돼 있어 장애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으며, 발달장애인의 경우 의사 결정이 효력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미흡한 상황이다.

한국장애학회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공적 지원을 통해 연명의료 등을 이용할 수 있는 경제적ㆍ제도적 기반을 먼저 마련한 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논의를 해야 맞다"며 "또 생명윤리 정책과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장애인계의 참여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용어설명 : 안락사는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 자발적 안락사, 비자발적 안락사 등으로 나뉘며, '웰다잉 법'에서 대상으로 삼는 것은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소극적 안락사란 존엄사와 혼동되어 사용되는 용어로, 치료 및 생명연장에 필수적인 의료행위를 중단하여 사람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를 다시 낮추면서 고등교육 재정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대학 재정 압박과 가계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환경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가 31일 이틀째 이어지며 ‘셀프조사’의 한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 부족과 노동자 보호 미흡 문제가 맞물리면서, 플랫폼 기업 전반을 겨냥한 제도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29일 서울 중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전산 정보만으로는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고교생 응급환자 사망 사례를 계기로,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단순한 병상 부족이나 이송 지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 의료진의 문제의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에 드러난 실태를 중심으로 고립의 원인과 제도적 대응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부가 등유·LPG를 주로 사용하는 난방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에너지 복지 정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환율과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일회성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이 26일 공개되면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내년 3월 10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 지침을 제시했지만, 원청 책임의 범위와 노동쟁의 인정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가 국가 책임을 전제로 한 배상·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넘게 이어진 피해 구제 논의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이번 방침은, 피해자 구제 방식은 물론 향후 재난 대응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교사 보호 필요성이 현장과 여론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학생 인권 침해와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맞서고 있다. 교육 당국은 제도 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적·행정적 쟁점 검토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