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가 저작권법 위반했다?
인천의 초등학교 70여 곳이 컴퓨터 워드프로세서에 쓰이는 글자체(폰트) 무단 사용을 둘러싸고 저작권 보유업체와 갈등을 빚고 있다.
29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인천 전체 초등학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78곳이 이달 초 컴퓨터 글자체 '윤서체'의 개발업체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다. 여기에는 해당 학교가 윤서체 가운데 유료 글자체를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는 주장과 함께 275만 원을 내고 유료 글자체 사용권을 구매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시교육청은 우선 일선 학교에 개별적으로 대응하지 말도록 지시하고 업체 측과 협상을 벌이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최근 워드 글자체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빈발해 일선 학교에 저작권법 위반 관련 교육을 강화한 상태여서 명백한 증거 없이 수십 개 학교의 무단 사용 주장을 일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교육청은 업체 측이 78개 학교 각각에 대해 그동안 유료 글자체를 무단 사용한 구체적인 증거를 댈 경우, 해당 학교의 글자체 사용권 구매를 추진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 같은 행위가 '폰트 저작권 사냥'이란 비판도 적지 않다. 이미 올해 초 대학을 중심으로 한차례 저작권 라이선스 강매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지난 1월엔 폰트 업체로부터 위임을 받아 일반인을 상대로 합의금을 받아내던 법무법인이, 대학생들의 불법 폰트 사용을 빌미로 해당 대학 측에 폰트 라이선스를 강매한 바 있다.
호남지역 대학을 시작으로 부산과 경남, 충청지역 등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표적이 되었으며, 사태가 확산되자 한국대학홍보협의회가 직접 해당 폰트 업체와 협상을 벌여 라이선스 '공동구매'를 진행하기로 했다. 재학생 기준 1만 명 이상 대학은 1천700만 원(A군), 5천 명 이상은 1천400만 원(B군), 5천 명 미만은 1천만 원(C군)을 내고 폰트의 1·2차 라이선스를 영구 취득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대학은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재학생들이 폰트를 영리 목적이 아니라 과제물과 단체 활동 등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저작권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는 비영리단체 오픈넷 남희섭 이사는 "저작권 권리 행사를 핑계로 물건 강매하는 법파라치들의 행태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어 몇몇 대학들이 공동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한 상태"라며 "저작권 보호 차원이 아니라 수익의 일환으로 권리자와 변호사가 결탁해 '권리 남용'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실정법상 폰트 저작권 침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렇다면 실정법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서울고등법원 판례에선 "폰트 도안은 일부 창작성이 포함되어 있고 문자의 실용성에 부수하여 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점은 인정되나, 그 미적 요소 내지 창작성이 문자의 본래 기능으로부터 분리, 독립되어 별도의 감상 대상이 될 정도로 독자적 존재를 인정하긴 어렵다. 따라서 그 자체로 저작권법상 보호의 대상인 저작물 내지 미술저작물로 인정하긴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다만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서의 폰트 파일에 대한 대법원 판례는 "컴퓨터내에서 특정한 모양의 폰트의 윤곽선을 크기, 장평, 굵기, 기울기 등을 조절하여 반복적이고 편리하게 출력하도록 특정한 결과를 얻기 위하여 프로그래밍 언어의 일종인 포스트스크립트 언어로 제작된 표현물이고, 그 내용도 좌표값과 좌표값을 연결하는 일련의 지시,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구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상의 컴퓨터프로그램에 해당한다."라며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폰트 파일의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해 등록 등 별도의 절차 없이도 자동적으로 보호된다.
컴퓨터프로그램저작물로서 보호되는 폰트 파일은 프로그램 자체를 무단 복제하거나 불법적으로 전송하지 않는 한, 폰트의 이용 행위 자체만으론 저작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폰트 프로그램을 정상적으로 구매 또는 라이선스 받아 PC에 설치하였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저작자의 저작권이 미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인 또는 종업원 등이 업무에 관하여 폰트 파일을 불법으로 사용하는 등 저작권법을 위반한 경우, 행위자 외에 법인 등도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다하지 아니한 경우엔 책임을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즉 PC에 설치되어 있는 폰트를 사용한 학생들은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지만, 최초에 폰트를 불법적으로 설치한 자와 관리자인 학교는 저작권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업체 측은 인천의 초등학교들이 윤서체 가운데 유료 글자체를 무단 사용한 증거로 교실 안 게시물과 가정통신문 사진 등 모두 6건의 자료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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