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가습기 살균제가 아들 인생 산산조각냈다"…엄마의 눈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

사연은 권씨가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던 지난 2003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꿈에 그리던 아들 임군을 얻은 권씨는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가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다.

첫 아이에게는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모든 것을 최고로 해주고 싶었다.

문제는 가습기 살균제를 1년 가량 사용한 2004년 초 시작됐다.

처음엔 아이가 그냥 감기에 걸린 줄 알고 동네 병원을 찾았지만, 갑자기 물었던 젖병을 뱉어내고 토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자 수원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임군은 입술이 새파랗게 질리며 호흡을 하지 못했고, 결국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됐다.

6개월 가량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임군은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등 위기의 순간을 수차례 넘겼다.

서울의 종합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5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병원마다 진단도 제각각이었다.

'급성호흡신부전증'부터 '간질성폐질환'까지 당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됐다.

퇴원 후에도 임군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산소통을 끌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탓에 또래를 제대로 만날 기회조차 없었다.

특수교육기관인 무지개학교를 통해 인터넷으로 수업을 받았고, 진짜 학교에는 남들보다 1년이나 늦게, 그것도 일주일에 한차례만 등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권씨는 뉴스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례를 접하고 10여년 전을 떠올렸다.

가습기 살균제가 임군을 그렇게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고통 속에 보낸 시간들이 억울하고 또 억울했던 권씨는 살균제 제조사와의 긴 싸움을 시작했다.

권씨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했다는 증거인 영수증조차 하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마트는 물론 본사에도 연락을 취해 2003년 초 구매 영수증을 다시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5년이 지난 영수증은 모두 폐기하도록 돼 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권씨는 옛 앨범을 뒤지던 중 가습기 살균제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2003년 크리스마스 이브, 임군을 안고 찍은 가족사진 속에는 창틀 위에 올려진 가습기 살균제가 뚜렷하게 나왔다.

권씨는 이 사진을 증거로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피해자라는 사실을 증명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제조사는 눈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2년 전에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자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제조사를 직접 찾았다.

임군의 손을 잡고 처음 방문한 제조사에서는 권씨를 문전박대 했다. 이후 다른 피해자들과 몰려갔을 때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권씨는 "아이의 목에는 구멍이 뚫렸는데 전무라는 사람이 나와보고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며 "아이는 앞으로 수십년을 산소통에 의지해 살아가야 한다. 이 원통함을 누가 알 수 있겠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권씨는 2012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및 국가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다툼을 계속하고 있다.

소송도 소송이지만, 권씨는 이에 앞서 제조사 측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먼저 받고 싶다고 말한다.

권씨는 "산소튜브로 호흡하는 아이가 샤워하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있느냐"며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수십년은 무엇으로도 보상하지 못한다.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를 산산조각 냈다"고 눈물을 쏟았다.

이어 "단 한번만이라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애끓는 심경을 전했다.

임군은 지난해부터 매일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 체육시간에 피구를 해보는 게 소원인 임군은 올해 6학년으로 이날도 제 몸만한 산소통을 손수레에 싣고 학교에 다녀왔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를 다시 낮추면서 고등교육 재정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대학 재정 압박과 가계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환경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가 31일 이틀째 이어지며 ‘셀프조사’의 한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 부족과 노동자 보호 미흡 문제가 맞물리면서, 플랫폼 기업 전반을 겨냥한 제도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29일 서울 중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전산 정보만으로는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고교생 응급환자 사망 사례를 계기로,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단순한 병상 부족이나 이송 지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 의료진의 문제의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에 드러난 실태를 중심으로 고립의 원인과 제도적 대응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부가 등유·LPG를 주로 사용하는 난방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에너지 복지 정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환율과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일회성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이 26일 공개되면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내년 3월 10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 지침을 제시했지만, 원청 책임의 범위와 노동쟁의 인정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가 국가 책임을 전제로 한 배상·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넘게 이어진 피해 구제 논의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이번 방침은, 피해자 구제 방식은 물론 향후 재난 대응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교사 보호 필요성이 현장과 여론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학생 인권 침해와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맞서고 있다. 교육 당국은 제도 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적·행정적 쟁점 검토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