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뭐하나 지킨 게 없다'…총체적 안전불감 남양주 폭발사고

남양주 폭발 붕괴 사고

지난 1일 발생한 남양주 지하철 폭발ㆍ붕괴사고 현장에서 안전수칙은 무용지물이었다.

안전시설은 애초에 없었고 규칙은 깡그리 무시됐다. 현장을 감독할 책임자는 자리를 비웠고, 안전교육 대신 사고로 조사 받을 때를 대비한 사전 '말맞춤' 교육자료가 등장했다.

4명이 숨지고 10명이 중·경상을 입은 지난 1일 남양주시 진접선 복선전철 주곡2교 지하 공사현장 폭발·붕괴사고는 총체적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현재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현장의 안전불감증이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게 한다.

우선, 당시 희생자 등은 산소와 LP가스를 이용해 철근을 자르는 용단작업중으로, 매일 작업 후 가스통과 산소통을 위험물 저장소에 보관하고 퇴근해야 했지만 현장에 방치했다는 사실이 조사 초기 드러났다. 이 사실은 이후 폐쇄회로(CC)TV 녹화 영상 5일 치를 분석한 결과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또 산소절단기에 연결하는 가스호스 역시 지하 작업장에 방치한 채 밸브만 잠그고 퇴근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왔다는 진술도 확보됐다.

다른 현장 안전수칙 역시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가스 폭발이 우려되는 현장이었지만 화재 감시인을 배치하라는 권고사항은 무시됐고, 가스 누출 경보기와 환풍기 등 안전시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근로자 안모(60)씨는 "환풍기와 안전장치는커녕 디딜 계단도 제대로 없었다"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위에서 물이 떨어져 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고 열악한 현장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사고 당일 현장에는 시공사와 협력업체의 책임자도 없었다. 시공사인 포스코건설 담당 소장은 물론 현장의 실질적 책임자인 협력업체 매일ENC 소속 현장 소장도 자리를 비웠다. 당시 매일ENC 소속 과장과 차장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근로자에게 안전교육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은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당일은 물론이고 평소에도 '화재 및 폭발사고 위험이나 가스 누출 유무 확인'과 관련한 안전교육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했다.

여기에 더해 현장의 안전을 관리ㆍ감독할 감리업체는 안전교육 대신 사고 후 책임을 피하고자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말맞춤' 교육자료까지 만들어 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본부가 지난 3일 감리업체인 수성엔지니어링 사무실에서 압수한 파일에서 경찰이나 사고위원회 조사에 대비해 답변요령을 교육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문건이 발견된 것이다.

문건에는 '시공사에서 교육을 했다'거나 '사고 전날 가스 냄새가 없었다'는 등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근로자들끼리 입을 맞추게끔 하는 요령이 포함됐다.

공사현장의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들이다. 더 큰 문제는 전국 대부분의 건설 현장에서 비슷한 문제가 있어 보인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 이승현 정책국장은 7일 "건설 현장에 안전수칙이 있지만 전국 대부분 현장에서 번거롭다는 이유로 무시당해 똑같은 사고가 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특히 "일용직 근로자들은 현장을 자주 옮겨 다니기 때문에 현장의 안전 상황을 파악할 여력이 없다"며 "공사를 책임지는 시공사 등이 최소한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정책 톺아보기] 대학 등록금 인상 한도 하향, 부담은 누가 지나

교육부가 내년도 대학 등록금 법정 인상 한도를 다시 낮추면서 고등교육 재정 구조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기조 속에서 대학 재정 압박과 가계 부담 완화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충돌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이슈인 문답] 쿠팡 청문회 논란, ‘셀프조사’가 남긴 쟁점은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과 노동환경 논란과 관련해 국회 청문회가 31일 이틀째 이어지며 ‘셀프조사’의 한계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조사 과정의 독립성 부족과 노동자 보호 미흡 문제가 맞물리면서, 플랫폼 기업 전반을 겨냥한 제도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이슈인 문답] 응급실 ‘뺑뺑이’ 반복, 구조적 원인은 무엇인가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지 못한 채 이송을 반복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문제와 관련해 김정언 중앙응급의료상황실장이 29일 서울 중구 광역응급의료상황실에서 “전산 정보만으로는 실제 수용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부산 고교생 응급환자 사망 사례를 계기로, 응급실 미수용 문제를 단순한 병상 부족이나 이송 지연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현장 의료진의 문제의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이슈인 문답] 은둔형 외톨이 5%, 사회적 고립 구조화

한국 사회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사회적 고립이 개인의 선택이나 성향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위험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이번에 드러난 실태를 중심으로 고립의 원인과 제도적 대응 과제를 문답 형식으로 짚어본다.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책 톺아보기] 에너지바우처 추가 지원, 취약계층 체감도는

정부가 등유·LPG를 주로 사용하는 난방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에너지바우처를 추가 지원하기로 하면서 겨울철 에너지 복지 정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환율과 연료비 상승이 맞물리며 취약계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나온 조치다. 다만 일회성 지원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 공개, 사용자 책임 어디까지

노동조합법 개정에 따른 이른바 ‘노란봉투법’ 가이드라인이 26일 공개되면서 사용자 책임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내년 3월 10일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현장 혼선을 줄이기 위해 해석 지침을 제시했지만, 원청 책임의 범위와 노동쟁의 인정 기준을 두고 노동계와 경영계의 시각 차는 여전히 크다.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정책 톺아보기] 가습기살균제 배상 전환, 국가 책임 어디까지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해 정부가 국가 책임을 전제로 한 배상·지원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히면서, 10년 넘게 이어진 피해 구제 논의가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참사를 사회적 재난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국가가 전면에 나서겠다는 이번 방침은, 피해자 구제 방식은 물론 향후 재난 대응의 기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학생부 기록 논쟁, 제도화 문턱까지 왔다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는 방안을 둘러싼 논의가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교사 보호 필요성이 현장과 여론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가운데, 학생 인권 침해와 낙인 효과를 우려하는 시각도 맞서고 있다. 교육 당국은 제도 도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적·행정적 쟁점 검토에 착수했다.